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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無현수막 도시’를 위하여

조선일보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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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無현수막 도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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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 종료...입장표명 안건 모두 가결
정당 현수막은
과장·왜곡·조작·혐오 등
현수막 과잉 사회의 주범

‘거리는 모두의 것’이며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
경기 수원시의 한 도로변에 정당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현수막 사이로 한 군소 정당이 이재명 대통령 측근인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관련 현수막을 걸어놨다.

경기 수원시의 한 도로변에 정당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현수막 사이로 한 군소 정당이 이재명 대통령 측근인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관련 현수막을 걸어놨다.


정치권에서 현수막 논쟁이 뜨겁다. 지난봄 모 정당이 중국과 중국인을 비난하는 문구나 부정선거 음모론을 담은 현수막을 전국적으로 게시하면서 본격화된 사안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집권 여당 쪽에서는 이를 ‘혐오 현수막’이라 부르면서 극우 딱지를 붙였다. 특히 혐중(嫌中) ‘인종 차별’ 부분은 통상적인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다는 입장이다. 이에 당사자들은 ‘애국 현수막’이라며 반발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당은 지난 9월, ‘정당 현수막’의 게시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하였다.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이나 ‘직전 전국 단위 선거에서 1% 이상 득표한 정당’만 현수막을 걸 수 있게 함으로써 이른바 군소 정당들의 허위·불법 행위를 막겠다는 취지다. 급기야 이 대통령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정당 현수막 규제를 위한 법 개정을 직접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야당 쪽에서는 최근 늘어난 김현지 대통령 부속실장과 관련한 현수막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정당 현수막은 문제투성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정당 활동 보장’이라는 정당 현수막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 사실을 과장·왜곡·조작하는 정보가 넘쳐 날 뿐 아니라 저질스럽고 역겨운 문구 또한 예사로 등장한다. 정당과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구당 총책 등의 성과 보고나 정책 제안 중에도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내용이 더 많다. 정당 현수막이 명절 인사나 수능 응원을 하는 모습도 마뜩잖기는 마찬가지다. 거기에 국민 세금으로 개인의 얼굴까지 큼지막이 넣는 몰염치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잖아도 대한민국은 세계 굴지의 플래카드 나라다. 동원형 소통 문화의 전통과 과시성 행정 문화에다가 인구 밀도가 높고 보행자 통행량이 많은 까닭이다. 그 결과, 차로나 로터리, 횡단보도, 지하철 출입구 등 온 천지를 현수막이 뒤덮고 말았다. 1992년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정으로 ‘현수막 공해’에 나름 대처해 오긴 했다. 그러다가 2022년 민주당 주도로 정당 현수막은 옥외 광고물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당명, 연락처, 게재 기간 등만 기재하면 최대 15일간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당대표가 이 대통령이었고,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도 찬성했다.

시나브로 정당 현수막은 현수막 과잉 사회의 주범이 되어 있다. 뒤늦게나마 정부 여당이 그 개선책을 찾아 나선 것 자체는 반갑다. 하지만 그 목적이 현수막을 허위나 비방, 혐오 표현으로부터 지키는 차원이라면 아직도 사안의 본질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한 처사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현수막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혐오 현수막을 달지 말자’는 정당 현수막을 실제로 보면서 느끼는 배신감이나 허탈감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문제의 핵심은 정당 현수막이 아닌 현수막 그 자체다. 우선 현수막은 다분히 반환경적이고 반생태적이다. 연간 3만~4만t에 이르는 폐(廢)현수막은 환경부가 재활용 통계에 포함하지 않을 정도로 그냥 쓰레기 신세다. 현수막은 또한 도시 조류의 비행이나 서식을 방해하기도 한다. 현수막이 대량 혹은 연속적으로 설치되어 있을 경우 새들의 눈에는 인공 장벽으로 보이기 일쑤이며, 특히 바람에 흔들릴 때는 위협 요소로 인식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결정적인 것은 도시 경관에 입히는 상처다. 선진국 글로벌 도시일수록 현수막은 아예 없거나 거의 없다. ‘거리는 모두의 것’이라는 기치 아래 도시의 외관을 공공재로 간주하는 그곳에서는 불필요하거나 불쾌한 시각적 자극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기본적으로 크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 관념이 일찍이 뿌리내린 것이다. 파리나 베를린에서 거리 현수막은 원천적으로 불법이다. 뉴욕에는 디지털 전광판이나 공공 디자인 패널만 존재한다. 도쿄나 교토 등지에서도 우리와 같은 천 현수막은 도무지 찾기 어렵다. ‘무(無)현수막 도시’가 세계적 표준이고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도시 공간에 대한 미적 감수성이나 공적 마인드가 너무나 저조하다. 걸핏하면 출장이나 답사 명분으로 해외 유명 도시를 찾아가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길거리를 눈 감고 다니는 모양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한국적 현실은 이 문제에 대한 건축이나 도시 계획, 도시 설계, 조경 등 도시 미관 관련 학회 및 전문가들의 집단적 침묵이다. 모쪼록 프로젝트를 매개로 이래저래 정치권과 잘 지낼 수밖에 없는 관변 지식인 사회의 비겁한 일면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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