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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서해 위기 앞 ‘실용 외교’의 향방

조선일보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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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서해 위기 앞 ‘실용 외교’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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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AFP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떠오르기 전부터 미국 조야(朝野)의 선입견은 상당했다. 워싱턴 DC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그가 집권하면 한미 동맹에 불협화음이 일 가능성이 크고, 한일 관계가 문재인 정부 시절로 역행해 애써 공들인 한·미·일 삼각 협력이 흔들릴 것으로 봤다. “중국에도 셰셰(謝謝·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하면 된다”는 인식 또한 중국 패권주의를 견제하려는 자유·민주 진영의 전열을 헝클 것으로 우려했다. 2023년 한 외신 기자가 그에게 “당신은 위험 인물인가”라고 물은 적도 있다. ‘선동가(firebrand)’란 수식어가 붙는 그의 기질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과 어우러질 수 있는가에 관한 걱정도 적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런 선입견을 하나둘 깨고 있다. 첫 미국 방문에서 “더 이상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할 수 없다”며 보수 대통령들도 하기 어려웠던 말을 꺼냈다. “자위대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힐 수 있다”던 2년 전 말이 무색하게 일본과는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셰셰 외교’도 한때의 수사였나 보다. 최근 한미가 발표한 팩트시트에는 대만 해협에서의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항행(航行)·상공 비행의 자유 준수, 모든 나라의 국제법에 부합하는 해양 영유권 주장 등이 두루 언급돼 있다. 암호문 같지만 모두 중국을 겨냥한 문구다. 압권은 트럼프 면전에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도입하려는 이유로 ‘중국 잠수함에 대한 추적 제한’을 꼽은 대목이었다.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한중 관계도 관리하겠다는 게 이 정부의 ‘실용 외교’다. 한국이 동북아에서 미·중 같은 패권 세력의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고,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가 될 수 있다는 역대 진보 정부의 희망 사항을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국제 정세는 외교 앞에 ‘실용’을 붙이기 점점 더 어려운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일본 총리처럼 굳이 민감한 현안을 들쑤시며 선제적으로 나설 필요도 없지만, 어설프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위험성이 커진 것이다.

요즘 미 외교가는 중국이 완력을 과시하는 서해에서 한국이 국제 규범을 어떻게 수호할지 촉각을 세우고 지켜보고 있다. 우리 조사선과 중국 해경이 15시간 동안 대치한 사실이 한 싱크탱크 보고서로 뒤늦게 알려진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불법적 해양 영유권 주장을 쉬쉬하다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친 남중국해 꼴이 날 수 있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더 큰 위험이 온다”고 경고한다. 시진핑 주석에게 경주 황남빵을 선물하고 반중(反中) 시위를 자제시키는 실용 외교로는 통하지 않는다. 냉혹한 국제 현실 앞에서 중국을 상대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외면한 진실이 큰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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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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