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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오페라 왜 평일 낮 3시에 하나? “6시간이라 막차 끊겨요”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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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오페라 왜 평일 낮 3시에 하나? “6시간이라 막차 끊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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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공연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국내서 오페라 무대로는 처음
“바그너는 우릴 끌어당기고 안 놔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하는 최상호(왼쪽부터) 국립오페라단 단장 , 정재왈 서울시향 대표, 야프 판 즈베던 서울시향 음악 감독, 연출가 슈테판 메르키,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하는 최상호(왼쪽부터) 국립오페라단 단장 , 정재왈 서울시향 대표, 야프 판 즈베던 서울시향 음악 감독, 연출가 슈테판 메르키,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국립오페라단


평일 낮 3시에 시작하는 오페라가 있다. 다음 달 4~7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독일 작곡가 바그너(1813~1883)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다. 주말(6~7일) 낮 3시 공연은 통상적인 관례다. 흥미로운 점은 주중인 4~5일에도 똑같이 낮 3시에 시작한다는 점이다. 예술의전당은 두 차례 휴식 시간을 포함해서 전체 공연 시간이 5시간 40분에 이른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만약 다른 오페라처럼 평일 저녁 7시 반에 시작했다가는 자칫 집에 돌아갈 막차도 끊길 판이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17일 사전 간담회에서도 제작진의 흥분감과 도전 정신이 드러났다. 뉴욕 필하모닉 출신으로 서울시향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네덜란드 지휘자 야프 판 즈베던(65)은 “바그너의 음악은 마약(drug)과도 같다. 하루 종일 바그너와 함께 잠들고, 바그너를 꿈꾸고, 바그너와 함께 깨어나고 바그너와 함께 식사하는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판 즈베던은 뉴욕 필하모닉을 맡기 이전에도 홍콩 필하모닉과 함께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녹음해서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19년 홍콩 필은 영국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 시상식에서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바그너의 음악은 우리의 목을 잡은 뒤 쉽게 놓아주지 않고서 그의 세계로 끌어당긴다”면서 “바그너의 음악은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다. 물론 그는 “나는 전자(前者)이며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사탕 가게에 온 듯한 흥분감을 감출 수 없다”며 웃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졸데가 자신의 약혼자를 살해한 트리스탄과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중세 유럽 전설에서 유래했다. 음악적으로도 대담한 반음계(半音階·반음 간격으로 진행되는 음계)의 활용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정점이자 20세기 현대음악을 예고하는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남녀 주인공 의상. 우주복에 착안했다./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남녀 주인공 의상. 우주복에 착안했다./국립오페라단


이 오페라는 지난 2005년 코리안 심포니(현 국립 심포니)가 부분적으로 2막을 연주한 적이 있고, 2012년에는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무대·연출 없이 콘서트 형식으로 전막을 연주했다. 하지만 무대·의상·연출이 들어간 오페라 형식으로는 ‘국내 첫 무대’가 된다. 이번 무대를 위해서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향이 공동 주최 자격으로 손잡았다. 국립오페라단은 지난해 ‘탄호이저’부터 올해 ‘트리스탄과 이졸데’까지 바그너 오페라들을 꾸준하게 무대에 올리고 있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고도의 집중력과 음악적 역량을 요구하는 대작”이라며 “국내 예술 단체의 제작 역량을 총동원했다”고 밝혔다.

중세 전설의 성(城)과 선박이라는 원작 배경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서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으로 옮긴 점도 이번 무대의 특징이다. 스위스 출신 연출가 슈테판 메르키는 “바그너 음악에서 죽음은 하강하는 선율로, 그리움과 욕망은 상승하는 선율로 표현된다. 이처럼 무한히 출렁이는 물결 같은 바그너 음악에 착안해서 바다는 우주, 배는 별들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무대 의상에 대해서도 “우주복과 군복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중세 전설 속의 비극적 사랑이 우주적 사랑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대여섯 시간에 이르는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들은 성악가들에게도 지난한 도전이 된다. 테너 스튜어트 스켈톤·브라이언 레지스터가 트리스탄 역,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엘리슈카 바이소바가 이졸데 역을 나눠서 부른다. 이졸데 역의 포스터는 ‘바그너 음악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도 ‘니벨룽의 반지’ 여주인공인 브륀힐데 역을 불렀다. 성악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조산원과 간호사로 근무했던 독특한 경력도 있다. 포스터는 “이졸데 역은 음악적·정신적·인간적으로 가장 힘든 배역 가운데 하나”라며 “조산원으로 아기를 받고 간호사로 일했던 경험이 정신적 준비에도 톡톡히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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