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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北中 아닌 美 압박에 대북뉴스 중단… 참 아이러니”

조선일보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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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北中 아닌 美 압박에 대북뉴스 중단… 참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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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전파 앞장섰던 RFA 베이 팡 회장 인터뷰
베이 팡 자유아시아방송(RFA) 대표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0일 워싱턴 DC의 RFA 한국어 방송 스튜디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베이 팡 자유아시아방송(RFA) 대표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0일 워싱턴 DC의 RFA 한국어 방송 스튜디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10일 찾은 미국 워싱턴 M가(街)의 자유아시아방송(RFA) 사무실은 입구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는 직원을 제외하면 인기척이 거의 없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이 직원은 “혹시 장비를 반납하러 온 것이냐”고 물었다. 건물 세 층을 임차한 이곳은 한때 400명이 넘는 직원이 출근, 북한·중국 등 6국에 아홉 언어로 방송을 내보내며 민주주의 전파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1주일 청취자는 5800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 닫을 준비를 거의 다 마친 상태였다.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소식을 전하고, 북한 소식을 외부로 전하던 한국어 방송 제작 스튜디오는 지난 7월부터 불이 꺼져 있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RFA 관할 기구인 글로벌미디어국(USAGM)의 인력·기능 최소화를 명령하면서 RFA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더불어 직격탄을 맞았다. 자금난이 계속되다 지난 5월 직원 90%를 휴직시켰고, 최근에는 뉴스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했다. 이날 만난 베이 팡 RFA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어둠 속 북한에 빛을 밝히는 작은 손전등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잠시 겨울잠을 자러 가지만 다시 북한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다음은 팡 회장과의 일문일답.

- 현재 RFA가 처한 상황은.

“내년도 예산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5월 초에 직원 90%를 휴직시켰고,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져 해고를 결정했다. 지금은 극소수 인원만 일하고 있다. 옛 동료들이 새 직장을 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아프다. 다만 의회에 아직도 우리의 미션을 지지하는 분이 많기 때문에 후일을 도모하려면 잠시 겨울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다.”

- 트럼프 행정부는 RFA 등이 좌편향됐다고 말한다.

“USAGM 수장인 카리 레이크가 의회에 출석해 ‘아시아에 자유 언론이 필요한 나라가 없다’고 했는데, 우리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소통을 시도했는데 한 번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볼 수 없었다. RFA를 사실상 폐지시키는 결정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었다.”


- RFA는 중국·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의 이면에 관한 보도를 많이 해 압박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압박은 항상 있어 왔다. 특히 최근 몇 년 들어서는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에서 압박이 상당했다. 꽤 유명한 탈북민들 중에서 ‘RFA를 듣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북한은 이들의 가족을 감옥에 가두며 협박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는 평생의 사명처럼 북한 주민들이 평소 접하지 못하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계속 일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를 침묵시킨 것이 북한·중국이 아닌 이 나라(미국) 정부라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세계 곳곳에서 자유아시아방송(RFA) 뉴스 서비스를 담당한 기자들. 이들은 "정보가 없으면 자유도 없다"고 했다. /RFA

세계 곳곳에서 자유아시아방송(RFA) 뉴스 서비스를 담당한 기자들. 이들은 "정보가 없으면 자유도 없다"고 했다. /RFA


- RFA에는 탈북민 기자들도 많이 근무했다.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좋은 기사를 써서 상도 많이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통제가 심한 곳에서 효과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광범위한 대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들이 사라지는 건 그냥 기자 한 명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동안 축적한 네트워크가 사장되는 것이다. 서울 지국은 1명 정도만 남겨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인데, 다시 현장에서 우리 기자들이 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대북 정보 유입이 왜 중요한가.

“언론·표현의 자유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1996년 RFA가 설립된 배경을 보면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세계 다른 지역의 주민들도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미국적 가치관이 투영돼 있다. 지금 정부는 이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정보 유입은 RFA의 특화된 분야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BBC도 북한 관련 보도를 많이 하지만 한때 현지에 자국 외교관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달랐다.”


- 북한 내 청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세계 어디든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마을·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부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RFA가 북한 같은 곳에서 어둠 속에 숨겨진 비밀을 비추는 작은 손전등 같은 역할은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보가 없어서, 외부 세상과 단절돼서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북한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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