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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간 희토류 공급망을 둘러싼 경쟁이 육지를 넘어 해저로 확대되고 있다. 해저 희토류는 육지에 비해 채굴·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물질 관리에 유리하고, 육지에 못지않은 매장량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태평양 도서국 쿡제도가 해저 희토류를 둘러싼 미·중 경쟁의 중심 무대로 꼽힌다. 9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중국 해양조사선 ‘다양호(大洋號)’는 전날 쿡제도 수도 아바루아항에 입항해 해저 탐사를 진행 중이다.
불과 한 달 전에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지원을 받은 미국 국적 연구선 ‘노틸러스호’가 같은 해역에서 탐사를 마쳤다. 양국의 조사활동이 잇따르면서 태평양 해역이 사실상 ‘심해 자원 전선’으로 변하고 있다.
쿡제도 해저에는 코발트, 니켈, 망간 등 전기차 배터리 핵심 금속과 희토류가 다량 매장돼 있다. 쿡제도 해저광물청은 “중국 심해자원사무국과 공동으로 해저 지형 측량과 시료 채취를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쿡제도는 올해 2월 중국과, 8월에는 미국과 각각 심해자원 협정을 체결하며 표면적으로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중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교차하는 현장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조사선들이 해류와 해저 지형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있으며 향후 중국이 태평양에서 잠수함을 배치하거나 미국의 스텔스 잠수함을 추적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쿡제도를 둘러싼 해저 탐사가 과학 협력의 외피를 두른 패권 경쟁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일본도 희토류 확보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지난 6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희토류 조달 경로 다변화는 미·일 양국 모두에 중요하다”며 “미국과의 구체적 협력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1월 미나미토리시마 인근 수심 6000m 해역에서 희토류가 포함된 진흙을 끌어올리는 실증 실험을 추진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이 지역에 약 1600만t의 희토류 산화물이 매장돼 있다고 본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전 세계 최대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한 중국(4400만t)의 36% 수준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핵심광물·희토류 확보 프레임워크’에 서명하며 금융 지원, 비축제도, 보조금, 지분 투자 등 공동 지원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미국도 4월 행정명령을 통해 공해 자원의 상업화 절차를 신속화하고 민간 기업의 탐사활동을 허용했다.
국제 규범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알력도 심화되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해저기구(ISA)는 공해 자원을 ‘인류 공동유산’으로 규정하고 상업 채굴 규정을 마련 중이지만 회원국 간 이해가 엇갈리며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중국은 ISA 내 영향력을 확대해 5건의 공해 탐사계약을 확보했고, 이사회와 환경위원회에도 자국 인사를 다수 배치했다. 반면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비준하지 않아 ISA 회원국이 아니며, 자국 법에 근거한 독자 인허가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태평양 도서국의 입장은 뚜렷이 갈린다. 쿡제도, 나우루, 통가, 키리바시 등은 자원 개발을 통한 경제 자립을 추진하지만, 팔라우, 피지, 바누아투, 마셜제도 등은 생태계 훼손을 이유로 상업 채굴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팔라우는 최근 ISA 회의에서 “심해 채굴이 인류 공동유산을 훼손할 수 있다”며 채굴 금지 결의안을 제안했다.
해저 희토류 개발은 육상 채굴의 방사성 폐기물과 산성 폐수 등 환경 부담을 피할 대안으로 주목받지만 침전물 확산과 해양 생태계 교란 등 새로운 부작용 우려도 크다. 일본은 해수 재투입 방식으로 오염 확산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 중이며 미국은 무인 잠수정을 활용해 채굴 전후 해양 생태 변화를 실시간 관측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자원업계 관계자는 “20년 전 선진국들이 환경 부담을 이유로 육상 채굴을 포기하자 중국이 정련과 가공을 독점했다”며 “이번에는 공해 자원을 두고 ‘환경 대 안보’의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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