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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에 러 원유 사지 말라던 트럼프, 헝가리엔 OK… '제재 효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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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에 러 원유 사지 말라던 트럼프, 헝가리엔 OK… '제재 효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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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정상회담 계기
"1년간 러 원유 구입 문제 안 삼겠다"
불과 2주 전, 러 석유기업 2곳 제재
"러에 10억 유로 전쟁자금 주는 효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7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7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유럽연합(EU)과 인도 등에 “러시아산 원유를 사지 말라”고 압박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작 헝가리에는 예외를 허용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향후 1년간 헝가리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로스네프트와 루코일 등 러시아 최대 석유 생산기업 두 곳과 그 자회사 30곳을 제재하면서 이들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도 2차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전쟁자금줄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불과 2주 만에 헝가리의 거래는 눈감아 주기로 하면서 이중잣대 논란과 함께 제재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반이민정책과 국가우선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오르반 총리는 ‘동유럽의 트럼프’로 불린다.

"헝가리 빼고 나머지는 안 돼"... 이중잣대 논란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7일 백악관에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오찬회담을 주재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7일 백악관에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오찬회담을 주재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8일 미 CNN방송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열린 미∙헝가리 오찬회담에서 “헝가리에는 바다가 없고 항구도 없어서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헝가리는 (다른 유럽국가들과) 다른 위치에 있다”며 “(예외 적용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등 다른 국가의 러시아산 에너지 구입은 여전히 불가하지만 헝가리에 한해선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헝가리는 자국 정유시설 대부분이 유황 함량이 높은 러시아산 원유 정제에 맞게 설계돼 있어서 수입선을 바꾸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체코는 일찌감치 설비를 뜯어고쳐 지난 4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완전 중단했다. 헝가리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둔 오르반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언급된 유예 기간 ‘1년’이 내년 총선 일정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15년간 장기 집권 중인 오르반 총리는 최근 친유럽· 중도 성향의 야당 지도자 머저르 페테르가 경쟁자로 급부상하자 유권자들에게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날 결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이중잣대 논란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 방송은 “헝가리에 한해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1년간 유예하겠다는 트럼프의 행보는 불과 2주 전 러시아 석유회사와 거래하는 모든 사람을 처벌하겠다는 그의 결심과 상반된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에도 튀르키예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계속 구매했던 EU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 2028년부터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로 지난달 합의했다. 인도 역시 러시아산 원유 구입을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고율 관세 폭탄을 맞았다.

'김빠진' 대러시아 제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오르비타 스포츠 센터를 방문해 격려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오르비타 스포츠 센터를 방문해 격려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대러 제재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종전 논의에 소극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처음 단행한 제재가 불과 2주 만에 힘이 빠졌기 때문이다.

CNN은 “헝가리에 대한 예외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러 제재를 얼마나 진지하게 집행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며 “러시아 전쟁 자금줄을 차단해 종전을 앞당기려는 노력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및 청정대기연구센터(CREA)의 분석가 아이작 레비도 CNN에 “미국의 이번 결정은 10억 유로(약 1조6,800억 원) 이상의 전쟁 자금이 크렘린궁으로 흘러들어가게 만든 끔찍하고 불필요한 실수”라며 “다른 구매국에도 러시아와 계속 거래해도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베를린=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