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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세미', 전여빈의 역할이 제목이 될 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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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세미', 전여빈의 역할이 제목이 될 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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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 부세미 전여빈 / 사진=매니지먼트mmm

착한 여자 부세미 전여빈 / 사진=매니지먼트mmm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바랐을 영란이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수락했어요. 어쩌면 영란이에겐 돈보다 회장님의 뜻이 더 중요했을지도 몰라요. 시간이 흐른 뒤 무창으로 돌아와 '진짜 행복'을 만나지 않았을까요? 세상엔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던 영란이가 자신을 알아봐 준, 둘러싸고 품어준 사람들을 둥지로 삼아 '진짜 집'을 찾았을 거예요."

김영란 그리고 부세미. 전여빈이 그려낸 두 인물은 6주간 시청자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10년 전 이 길에 발을 들인 햇병아리 배우는 어느덧 자신의 역할이 제목이 되고, 얼굴이 포스터의 정중앙에 자리하는 '원톱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지난 4일 종영한 ENA 월화드라마 '착한 여자 부세미'(이하 '부세미')는 한 방을 꿈꾸며 시한부 재벌 회장과 계약 결혼한 '흙수저' 여자 경호원이 막대한 유산을 노리는 이들을 피해 3개월간 신분을 바꾸고 살아남는 범죄 로맨스물이다. 첫 회 시청률 2.4%(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한 '부세미'는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갔고, 마침내 최종회 7.1%라는 괄목할 만한 성적으로 ENA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 2위에 올랐다.

전여빈은 극 중 가성그룹 회장의 개인 경호원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여 '부세미'라는 가짜 신분으로 위장하는 김영란 역으로 열연했다.

먼저 "제작사에서 시청률 7% 넘으면 발리로 포상휴가를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최종회에서 정말 7.1%가 나왔다. '럭키 세븐'을 달성해 함께 고생하신 스태프분들과 떠날 수 있어 감사하다. 이 모든 건 '부요일'('부세미' 방송 요일)을 지지해 주신 시청자분들 덕이다"라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부세미'의 로그라인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흙수저 영란이, 너는 너 자체로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문장이었는데, 정말 맘에 들어서 칠판에 붙여놓기도 했다.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면 어떤 평가를 받건 마땅히 행복할 수 있다는 그 말이 큰 위로로 느껴졌다. 인간은 누구나 결핍이 있기 마련이지 않나.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이 로그라인은 저를 포함한 누구라도 듣고 싶은 말이라 생각했다."


'부세미'의 가장 큰 특징은 '복합장르'였다. 스릴러와 로맨스, 코미디가 섞인 다채로운 매력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겐 쉽지 않은 내용이었을 터였다. 전여빈은 "서울에서 만나는 가성그룹 사람들과 무창 사람들의 톤 앤 매너가 너무나 다른 것이 가장 어렵게 다가왔다"며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도록 중심축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1, 2회에서는 흡인력과 호소력이 가장 중요했다. 버림받은 처연한 길고양이 느낌을 내고 싶었다. 영란이는 평범함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기에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착하다'는 말은 쉽게 하는 칭찬이지만, 영란이는 자신이 가진 배경 때문에 칭찬을 듣기보다 오해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았다. 부세미가 된 유치원에서의 모습은 좋은 옷을 입어도 어색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내고 싶었다. '인생 리셋'을 건 계약을 했으니 절실함과 절박함이 드러나야 했다. 옷과 메이크업 등도 영란이의 욕망이 드러나고, 방어를 위한 공격을 하는 모습을 구현할 수 있게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영란과 세미 중 누가 더 선하냐'는 질문엔 "둘 다 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에서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란 영란이도 충분히 착하다. 영란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내다 보니 경호원을 꿈꾸게 된 것 같다. 손에 총이 쥐어졌을 때도 쏘진 못 했지 않나. 그건 본래의 선한 마음 때문인 듯하다.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엔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남을 가해하는 마음을 품지 못한 건 착해서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극 중 김영란은 가성호 회장(문성근), 이돈 변호사(서현우), 딸기 농사꾼 전동민(진영), 최강 빌런 가선영(장윤주), 또 다른 조력자 백혜지(주현영) 등 다양한 인물들과 얽힌다. 여러 동료들과 호흡한 소감은 어땠을까. 먼저 특별출연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대선배' 문성근을 언급, "서현우 오빠가 선배님에 대해 '슈퍼하이퍼리얼리즘의 대가, 원조'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선배님이 원래 캐릭터와 같은 성격이신 건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촬영할 때 저희와 사담을 나누진 않으셨고, 한쪽에서 조용히 대사를 계속 연습하셨다"고 회상했다.

"한 번은 선배님을 보고 울컥했던 적도 있다. 굳이 그 자리에 안 계셔도 되는데, 제가 연기하는 동안 맡으신 대사를 한사코 계속해주셨다. 1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선배님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터졌다.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도 연기를 해내시는 걸 보고 배우라는 직업에 어떻게 임하시는지가 느껴졌다. 결국 뒤돌아서 눈물을 닦았다"는 일화도 전했다.

'인생 리셋 프로젝트'의 조력자 이돈 역의 서현우와도 돈독했다. "현우 오빠와는 2018년 영화 '죄 많은 소녀'에서 담임선생님 역할로 처음 만났다. 그땐 지금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정말 간절하게 연기하던 때였다. 이번에 '부세미' 촬영에서 만나 '우리 그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올라갔다고 좋아하던 거 기억나냐'는 얘기도 나눴다"고 말했다.


이어 "툭하면 '오빠는 제 자랑이에요'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현장에서의 태도도 그렇지만, 배우로서의 스킬 역시 정말 뛰어나다. 이돈 역은 대사가 굉장히 많고 호흡이 빠른 캐릭터였는데, 그렇게 엣지 있고 코믹하게 표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다. 문성근 선배님도 현우 오빠에게 '넌 문학처럼 긴 대사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칭찬하셨다"며 "저희의 케미는 좋을 수밖에 없다. 10년을 가까이 알고 지냈지 않나. '찐 브로맨스 케미'가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스며든 사랑'을 그려낸 진영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사실 진영이 입장에선 동민이 역을 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영란이가 많이 보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영이가 남자 주인공으로서 제게 많은 힘을 실어줬다. 마음의 밭이 넓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조용하면서도 사람을 화합하게 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동민이 역에 대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도 실제 진영이의 모습과 닮아 따뜻한 면모가 잘 나온 것 같다. 느끼한 대사를 왕왕 하는데도 진영이가 하니까 담백하더라(웃음). 그리고 나이가 아직 어린데도 10년 된 스태프분들과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있다. 소중한 인연을 오래 지속해온다는 건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다."

작중 최종 보스이자 악연으로 만난 장윤주는 어땠을까. "윤주 언니는 정말 스위트하고 남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다. 제가 오빠랑 남동생만 있어 언니가 있는 사람이 정말 부러웠는데, 진짜 언니가 생긴 기분이었다. 선배보단 언니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좋은 기회로 알게 돼 너무 든든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저 김영란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순수한 우정을 연기한 주현영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현영이는 저와 반대로 쌍둥이 언니가 있는데, MBTI가 저랑 똑같다더라. 그래서 제가 본인의 언니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현영이는 머리가 비상해서 천재적인 면모로 장면을 해석한다. 또 정말 다정다감한 사람이라 현영이가 현장에 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웃는다. 영란이가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어둡고 진지했는데, 현영이가 등장할 땐 웃기거나 기묘한 순간들이 많아 부럽기도 했다."

'부세미'의 복합장르는 양날의 검이었다. 스릴러 성격이 강한 1, 2회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키다, 3회부터 본격적인 로맨스가 시작되며 "장르가 바뀐 것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전여빈은 이와 관련 "대본은 4회까지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 저도 1, 2부에 굉장히 매혹됐다. 처음부터 복합장르인 걸 알고 들어갔기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했다. 스릴러를 고대하신 시청자분들께 호불호가 나뉘었다는 걸 알아 죄송한 마음이다. 그런데 또 저희 어머니께선 영란이의 상황이 너무 힘든데 무창에서의 코믹함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주변인들의 밝은 모습을 보니 재밌다고 하시더라"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후반부에서 또 한 번 엇갈렸다. 김영란 대신 살인 누명을 쓰기로 한 전동민의 선택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 것. "김영란이 아닌 사람 전여빈으로선 저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던 그는 "사실 저도 감독님께 여쭤본 질문이었다. 아들 주원이는 어쩌고 저렇게 무모하게 현장에 남냐고 했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계기, 사랑의 크기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지 않나. '날 왜 사랑해?' '날 얼마나 사랑해?'라는 질문에 똑떨어지는 대답을 하긴 어렵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동민이는 영란이를 사랑하면서 영란이와 이돈을 믿은 것 같다. 두 사람이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내 가선영의 공격을 이겨낼 거라는, 위험하지만 아주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던 듯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전여빈은 '부세미'를 통해 데뷔 후 첫 1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1롤'은 막중한 긴장감과 책임감이 따라올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너무 뻔하게 들리겠지만, 배우가 되기 전부터 한 작품 한 작품이 정말 소중했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되면 안 된다, 힘이 돼야 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잘 수행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책임감은 컸다. 그 때문인지 방송 다음날엔 시청률 때문에 새벽부터 눈이 떠지더라. 아침마다 감독님과 진영이, 윤주 언니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극 초반 상승하는 시청률을 보며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소소하게 모여서 조금 울기도 했다."

경력이 쌓인 만큼, 숫자와 사랑이 같진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단다. "전작 '우리영화'는 시청률에선 부진했다면 부진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전 작품 속의 이다음이란 사람을 정말 사랑했다. 다음이를 통해 배운 게 많아 애틋하게 남아있다. 심지어 '멜로가 체질'은 시청률이 1%대였다. 1라는 숫자에 '이게 진짜야?'라고 농담을 하면서 촬영을 했다. 그래도 소수의 마니아층에게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작품으로 받는 사랑의 깊이가 시청률에 꼭 비례하는 것 같진 않다. 그런 의미에서 '부세미'의 성적이 너무나 감사하다. 다소 낯설 수 있는 유료 채널에서 이런 결과를 얻은 건 정말 큰 의미다. 큰 성과를 거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작품이 있지만, '부세미'도 부둥켜안고 '수고했다'고 말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데뷔 10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새싹 배우'로 여긴다는 전여빈. 그의 다짐은 다음 캐릭터를 또다시 기대하게 만들었다. "닿지 않는 유리천장에 부딪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도전하고 싶고, 안주하지 않게 되고,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다. 이 마음은 스무 살 무렵 연기를 동경하던 때와 비슷하다. 이제는 산업 안에 있는 사람인만큼, 함께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힘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좋은 연기를 보여주시는 선배들께 '믿고 보는 ○○○'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시지 않나. 저도 '믿고 보는 전여빈'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