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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은 말하곤 했지, 이제야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할 일을 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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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은 말하곤 했지, 이제야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할 일을 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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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단편소설] ⑫ 최유안 ‘손주에게’― 애국지사 이석규
아직 삭풍이 매섭던 3월 초하루, 친우와 얼마 전 개업한 목욕탕에 갔단다. 센토 양식의 목욕탕이 광주 바닥까지 들어왔다는 걸, 얼마 전 벗을 통해 들었거든. 깨끗한 복도, 남녀가 분리된 탈의실과 세신 공간, 넓은 온탕이 있는 신식 건물. 그때만 해도 내 고향에선 냇가에서 시간을 정해 놓고 멱을 감기 마련이었으니까. 장작불로 데운 뜨거운 물이 담긴 탕에 몸을 담글 수 있다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 입장료 10전이 아깝지 않았지. 부산스레 욕탕으로 들어가는 내게, 몸을 깨끗이 닦고 탕에 들어가야 한다고 친우가 말했어. 거참, 사범에 다니더니 무엇이든 가르치려 든다고, 내가 말했고 우리는 껄껄 소리를 내며 웃었지.

탕 안에는 대여섯 명이 몸을 녹이고 있었어. 성격 급한 내가 먼저 작은 바가지에 물을 떠서 몸을 적시고 친우에게 넘겼지. 내가 건넨 바가지를 받아 친우가 느긋하게 따뜻한 물을 몸에 적셨어. 내가 뻗은 발이 막 탕 안에 들어갔을 때, 우리 또래의 한 남자가 내게 물었지. 일본어였어. 욕탕 안에 소리가 울려 내가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어. 그러자 남자가 다시 물었어. 내 옆에 있는 친우가 나를 대신하듯 답했지. 이석규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친우의 얼굴을 내가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에 탕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내게 말을 건 남자가 눈을 흘겼어. 기타나이 조센징. 머리카락이 쭈뼛 섰어. 나는 물방울이 줄줄 흐르는 겁먹은 얼굴로 친우에게 눈짓했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고, 어서 나가자고. 그런데 석규가 대뜸 그 일본인을 향해 말하더구나. 우리가 어째서 더럽다는 거냐고. 더러운 일본인이라고 말하면 너희는 좋겠냐고. 그때 탕 안에서 우리를 업신여기는 기색으로 보던 남자들이 벌떡 일어서는 거야. 그러고는 곧장 석규에게 달려들었어. 한참 맞는 석규를 보다가 내가 소리를 질렀지, 저기 멀리서 순사가 온다고. 삽시간에 조용해졌어. 나는 틈을 타 석규를 일으켜 목욕탕 바깥으로 냅다 뛰었지. 그 일이 우리의 열일곱을 바꿔놓은 사건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단다.

어느 저녁, 우리는 기숙사 식당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어. 한 교우가 씩씩거리며 식당으로 들어왔지. 담양에서 통학하는 옆방 친구였는데, 삐걱대는 나무 의자에 앉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철도역에서 일본인 몇과 마주쳤는데, 멸시당하는 느낌이었다고 말이야.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1929년 광주역 앞에서 한일 학생 수백이 충돌하지 않았느냐고. 지금은 그때보다 멸시의 방법이 더 악랄해졌다고. 나와 석규는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어. 그날 밤 석규는 한잠도 못 이루고 뒤척이다 기숙사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봤지. 차디찬 바람이 옷깃을 스쳐 살을 파고들던 그 밤을 말이야. 그때 석규가 했던 말이 흰 바람결에 실려 가는 걸, 나는 보았단다.

황국 맹세나 가르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다음 날 아침 조회가 끝나가는 시간에 우리는 황국신민서사를 암송하고 있었어. 우리에게는 습관 같은 일이었지. 일,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이다. 이, 우리는 마음을 다 바쳐…… 석규는 조회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지. 조회가 끝나고도 학교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에 한동안 서 있더니, 이윽고 교정 밖으로 나가 버렸어. 따라가 보니 석규가 향해 가는 곳은 대인동 철도역이었지. 나는 성정 바른 석규가 어제의 기억 때문에 혹시라도 일을 낼까 봐 조마조마했어. 한 일본인이 석규의 어깨와 부딪혔어. 석규가 그를 매섭게 노려봤지. 그가 석규에게 시비를 걸었어. 석규는 그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지. 그러고는 마구 달려 학교로 돌아왔어. 그때 석규가 그러더군. 달음질은 내가 진짜 잘한다고 말이야. 전라북도 체전에서 1등을 해본 실력이라고.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학교로 돌아온 석규는 기숙사 작은 복도를 통해 지하로 내려갔어. 학교에 그런 곳이 있는 줄 나는 알지도 못했지. 복도 끝 작은 방 앞에 서자 철도역 사건을 알려주던 그 교우가 우리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어. 그곳이 ‘무등독서회’라는 이름을 가진 비밀 조직으로 가는 길이라는 걸 나는 그때 알았지. 목소리 높은 한 친구가 말하더군. 동무들, 우리 역사 바로 알기 토론회에 오신 것을 환영하네.


우리는 그날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 철도역을 통해 쌀과 면화가 일본으로 실려 간다는 사실, 우리가 받는 교육이 어째서 군사훈련 같은지, 징병 소집된 젊은 조선의 피들을 어디로 보내버리는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밀리고 있는 현실도 말이야.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우리가 일본을 위한 전쟁에 끼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그날 들은 내용으로 방을 만들었지. 누군가 그것을 붙일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어. 석규가 말하더군. 나, 알아주는 달음질 실력을 갖추고 있어, 하고 말이야. 사범학교는 사범학교야. 전국 인물들이 다 모였네. 누군가의 말에 모두 크게 웃었어. 그 웃음은 열정을 대신했어. 우리의 심장은 용암처럼 끓고 있었지. 잃어버린 나라를 도로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그래야, 우리가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바로 그날 오후에 교무실에서 석규를 불렀어. 일본인에게 시비를 걸고 폭행한 죄를 물어 한 달 동안 정학 처분을 내린다고 말이야. 그 말을 전하면서 조선인 감독관이 석규에게 말하더군. 석규야 이놈아, 조용히 있어야 해.

이상한 일이지. 그 일이 있고 나서 오히려 석규는 신이 났어. 이제야 할 일을 알겠다던가. 우리는 첫새벽마다 광주 거리 샅샅이 그 방을 다 붙이고 다녔어. 독서회 일원들은 상해에서 오는 밀령을 받고 정보를 모아 전달하는 역할도 했지. 그제야 사범학교에 다니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가르쳐야 할 것이 무언지 알겠더라고, 석규가 말하곤 했어. 여름빛은 점점 뜨겁고 공기는 눅눅해졌지만, 날리던 바람의 결은 매서웠어.

즐거움은 얼마 가지 못했어. 활동이 적발되어 독서회 회원들이 죄다 경찰서에 잡혀갔거든. 누가 우리를 일러바쳤을까. 소문처럼 우리 중에 밀정이 있었을까.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은……기다란 가죽끈으로 때리고, 대나무 곤장으로 넓적다리를 사정없이 휘갈겼지. 욕조에 얼굴을 처박고, 거꾸로 매달아 위협하고, 난롯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장딴지를 지지고, 콧구멍에다 고춧가루를 푼 물을 부었어. 그런데 말이야. 그 모든 장면에서 아직 또렷하게 남은 기억이 있어. 일본 놈은 의자에 앉아 낄낄거리며 웃고 있을 뿐, 고문하는 이는 조선 사람이었다는 거. 온몸이 찢어지고 부러져도 더 격렬히 고통스러워하기를 바라는 놈이 조선 놈이었다는 거. 그때도 지금도 그것이 가장 원통하단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감옥을 나오며 들었단다. 하나둘 아는 얼굴이 보이더구나. 사지 멀쩡한 친우가 없었지만 우리는 기뻤어. 투옥하는 내내 근심하던 조국의 미래. 우리의 젊은 날을 포기해서라도 얻어야 마땅한 것, 광복. 그날은 내 나라의 오늘이자 내일이었어. 우리는 목숨을 걸어야 했지. 내 나라가 없으면, 내 장래도 없으므로. 이 땅, 대한민국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황국신민의 맹세를 암송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대한민국, 만세.

우리는 구호를 부르며 바깥으로 나갔어. 폭염이 심하던 여름 한낮이었어. 오전까지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는데, 낮이 되자 날이 아주 맑아졌다고, 흰 치마를 입은 여자가 말해줬지. 광복을 축복하듯 우리는 함께 뛰었단다. 사람들이 건넨 태극기를 받아 힘껏 휘날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 고초를 겪고 나온 누구도 자신을 독립투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저 시대의 임무를 다한 평범한 얼굴들이 되어, 인파를 따라 광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지.


아가, 네가 열일곱 생일을 기념해 친구들과 동명동에 간다는 소식을 네 엄마가 내게 전하더구나. 지금은 식당이 즐비한 그곳을 말이야. 동명동 200번지. 많은 이들이 갇힌 채 조국의 독립을 갈망했던 곳이란다. 동명동, 소리를 들으니 또렷하게 그와 나의 열일곱이 기억났단다. 석규는 얼마 전 100세 생일을 맞았어. 여전히 또랑또랑한 눈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마음껏 부르는 세상이 되었음을 기뻐했지. 그에게는 나라가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였다. 자신의 안위보다 나라의 장래를 더 걱정하던 나의 벗. 그가 꿈꾸었던 나라에서, 너희들이 조금 더 평안하기를, 조금 더 자유롭기를. 석규는 내게 그런 미래를 꿈꾸게 했지.

얘야, 너도 평생에 이런 벗 한 명은 꼭 만나길 바란다.

공동 기획: 조선일보·국가보훈부

이석규(1926~)

전북 완주 출신으로 1943년 광주사범학교 재학 시절 ‘무등독서회’를 조직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서적을 읽고, 항일 전단과 벽보를 배포했다. 1945년 연합군의 국내 상륙 시점에 맞춰 봉기를 계획했지만 계획이 사전에 노출돼 옥고를 치렀다.

소설가 최유안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보통 맛>, 장편소설 <백 오피스>, <새벽의 그림자>, 산문집 <카프카의 프라하> 등을 썼다. 노근리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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