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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 142m 빌딩’에 초강경 문체부장관 “해괴망측, 법령 개정 등 모든 조치 취해 막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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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 142m 빌딩’에 초강경 문체부장관 “해괴망측, 법령 개정 등 모든 조치 취해 막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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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장 “초고층 건물들이 종묘 내려다보는 구도 상상해보라”
한국고고학회 “종묘 앞 고층 개발, 문화적 기억 잘라내는 일” 반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7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 완화 조례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서울 종묘를 찾아 전경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7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 완화 조례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서울 종묘를 찾아 전경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근처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겠다는 서울시의 개발 계획에 대해 “해괴망측한 일”이라며 “장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7일 서울 종묘를 찾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며,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가진 곳으로, 문화강국 자부심의 원천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장관은 서울시의 종묘 인근 개발 계획에 대해 “이것이 바로 1960~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 아닌가. 문화강국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이런 계획은 반드시 막아야한다”고 말했다.

최 장관의 작심 발언은 대법원 판결로 서울시가 세운4구역 재정비사업을 재추진하려 하자 나온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에 있는 세운4구역에서 건물 최고 높이를 2배 이상으로 늘려 최고 142m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재정비계획을 일방적으로 고시했다.

최 장관은 또 특검 수사에서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9월 종묘 망묘루에서 비공개 차담회를 가진 사실까지 거론하며 서울시를 강력 비판했다. 최 장관은 “권력을 가졌다고 마치 자기 안방처럼 마구 드나들며 어좌에 앉고 차담회 열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처참하게 능욕을 당한 지가 바로 엊그제”라며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이 계속해서 이런 취급을 당해서야 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종묘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세계유산의 보존ㆍ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필요할 경우 새 법령 제정도 추진하겠다”며 “허 청장도 법령의 제정, 개정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신속히 검토해 보고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허 청장은 “대체 불가한 가치를 지닌 종묘가 지금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며 “위험을 자초한 것은 유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서울시”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사안이 “높이냐, 그늘이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초고층 건물들이 세계유산 종묘를 에워싼 채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구도를 상상해보라”며 “모든 방법을 강구해 세계유산 지위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과 국가유산청은 세운4구역 높이 변경과 관련한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의 고시 내용과 현재 상황을 유네스코 측과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고고학회도 이날 긴급 입장문을 내고 “종묘 앞 하늘과 시야를 가르는 고층 건물을 기정사실로 하려는 시도는 우리의 문화적 기억을 잘라내는 일”이라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하는 어떠한 행위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6일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정효진 기자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6일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정효진 기자


그동안 서울시는 종묘 근처 세운4구역 재정비사업을 추진하며 문체부와 갈등을 빚었다. 문화유산법(옛 문화재보호법)상 시·도지사는 지정문화유산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조례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 조례는 보존지역 범위를 ‘국가지정유산의 외곽경계로부터 100m 이내’로 정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의석의 3분의2 이상을 장악한 서울시 의회는 2023년 9월 해당 조항이 ‘상위법인 문화재보호법보다 포괄적이고 과도한 규제’라면서 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의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올해 4월 서울시에 재정비사업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체 계획에 대한 유산영향평가(HIA)를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화계에선 종묘의 경관을 초고층 건물이 해치면 세계유산 지위도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영국의 ‘리버풀, 해양 무역도시’는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나 주변 대규모 개발 사업이 문제가 되며 2012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이 됐고 2021년에는 세계유산 지위를 잃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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