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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콘크리트 빌딩 물려줄 건가... 종묘, 세계유산 취소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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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콘크리트 빌딩 물려줄 건가... 종묘, 세계유산 취소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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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개발 완화 조례 개정 적법"
종묘서 180m 떨어진 세운4구역
최고 높이 145m 빌딩 건축 가능
"종묘, 세계유산 지위 상실 우려"


6일 서울 종로구 종묘 모습. 뉴시스

6일 서울 종로구 종묘 모습. 뉴시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개발 규제 완화가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문화유산 경관 훼손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종묘의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세계유산인 경기 김포 장릉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개발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문화재냐 개발이냐... 종묘, 세계유산 지위 잃나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등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등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개정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6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서울시의회가 2023년 문화유산 보존지역(반경 100m) 밖에 있는 건물도 국가유산청과 협의해 규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한 조례 개정안을 의결하자 국가유산청이 무효 소송을 낸 데 따른 결정이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가 개발로 인해 세계유산의 지위를 상실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화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종묘와 불과 180m 떨어진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게 돼 종묘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서울이라는 고도는 경관 보존을 해야 하는데, 종묘가 무너지면 경복궁·창덕궁·풍납토성 등 많은 서울 유적지 주변에 다 난개발을 하게 될 것"라면서 "최근 주목받는 'K컬처'의 기반 중 하나인 전통 유산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6일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와 세운 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 모습. 뉴스1

6일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와 세운 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 모습. 뉴스1


서울시는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세운4구역 건물 높이 상한을 145m(41층 규모)까지 상향하는 내용의 고시를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가 유네스코 권고 사항인 세계유산영향평가 없이 일방적으로 고시를 변경했다며 반발했다. 유네스코 측은 올해 4월 서울시에 전달한 서한에서 세운4구역 개발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사업 계획에 대한 유산영향평가(HIA)를 실시할 것을 요청했다.

허 청장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관련 질의를 받고 "국가유산청은 2006년부터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고, 회의를 거치면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으라는) 유네스코 권고안을 따르라고 했다"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에 기습적으로 39층, 40층을 올린다고 변경 고시를 냈다"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재개발 규제 완화로) 세계유산 종묘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며 "미래 세대에게 세계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아니면 콘크리트 빌딩을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번 판결로 국가유산청이 종묘 인근에 고층 빌딩숲이 들어서는 걸 막을 법적 조치는 사실상 사라졌다. 현행 문화유산법상 문화유산 보존지역 개발 시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돼 있지만, 세운4구역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문화유산 보존지역(100m 내) 밖에 있어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세계유산 영향평가 급선무... 유산 보호 위한 사회적 협의



6일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 모습. 뉴스1

6일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 모습. 뉴스1


국가유산청이 건설사 등을 상대로 소송전을 제기할 수 있지만 전례를 비춰 볼때 승소하기 어렵다. 2021년 세계유산인 경기 김포 장릉(章陵) 주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논란이 됐던 이른바 '왕릉 뷰 아파트' 사태 때 국가유산청은 건설사와의 소송전에서 완패했다. 국가유산청은 건설사를 대상으로 공사중지명령을 냈지만 행정명령 무효소송에서 모두 패했다. 당시 법원은 국가유산청이 제대로 된 사전 고지 없이 이미 건설이 상당부분 진행된 건물의 공사 중지를 요구한 것이 과도하다고 봤다.

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와 협의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당장 적용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국내에도 세계유산법을 제정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미칠 수 있는 개발 사업의 경우 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하지만 의무 대상 사업 범위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세운4구역이 해당될 지 알 수 없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유네스코와 함께 세계유산 영향평가를 사전에 진행하도록 서울시에 요청하는 걸 최선의 대안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모습. 뉴스1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모습. 뉴스1


전문가들은 세운4구역 개발을 진행하더라도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이 종묘 경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협의체를 마련하는 방안을 주문했다. 기존에도 문화유산위원회 등에서 종묘와 가까운 종로변의 건물 높이를 1, 2층 수준으로 유지하는 방안 등이 논의한 바 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장인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고도 제한을 높이는 것 자체만으로 세계유산 지위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실제 개발을 잘못하면 바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가까이 있는 건물은 낮추고 시야각에 장애가 되지 않는 건물은 높게 하는 등의 절충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김보현 인턴 기자 kimbh33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