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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살던 이란 10대 신부… ‘남편 살해’ 누명에 돈 못 내면 사형

조선일보 문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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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살던 이란 10대 신부… ‘남편 살해’ 누명에 돈 못 내면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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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기. /EPA 연합뉴스

이란 국기. /EPA 연합뉴스


조혼 후 학대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이란 여성이 억대 ‘목숨값’을 내놓지 못하면 교수형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3일(현지 시각) 영국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북부 고르간 교도소의 여성 사형수 골리 코우흐칸(25)은 7년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현재 그에게는 이슬람 형벌 원칙인 ‘키사스(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적용된 상태다. 만약 경제적 보상으로 피해자 측 용서를 받지 못하면 예정대로 교수형이 집행된다는 의미다. 기한은 올 연말이다.

사연의 시작은 코우흐칸이 12세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수 민족인 ‘발루치족’ 출신인 코우흐칸은 어린 나이에 사촌 남성과 결혼해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결혼 생활은 악몽과도 같았는데, 매일 남편에게 신체·정서적 학대를 당했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해 부모 집으로 도망친 적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흰 드레스를 입혀 보낸 딸은 수의(壽衣)를 입기 전에 돌아올 수 없다”며 딸을 돌려보냈다.

사건은 2018년 5월 발생했다. 코우흐칸의 남편은 당시 다섯 살에 불과했던 아들을 때리고 있었고, 코우흐칸은 인근에 살던 친척을 불러 남편을 말리려 했다. 그러다 남편과 친척 사이에 싸움이 붙었고 이 과정에서 남편이 사망하고 말았다. 코우흐칸은 구급차를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친척과 함께 체포됐다.

이후 코우흐칸은 변호사 조력 없이 강압적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을 읽지 못했던 그는 범행을 자백하는 진술서에 서명해야 했고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유족 측에 용서를 구하기 위한 배상금 협상도 코우흐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도소 관계자들이 맡았다. 그렇게 정해진 배상금은 100억 토만(약 1억5000만원)이다.

인권 단체들은 이 사건이 이란 내 여성 인권 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발루치족 인권 옹호 단체 측은 “이번 사례뿐만 아니라 이란의 여성에게는 인권이 없다”며 “남편 말에 복종해야 하고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 부모들은 가난을 핑계 삼아 딸을 시집보내 버린다”고 했다. 인권 단체 이란인권(IHR) 측도 “코우흐칸에게 내려진 판결은 사형으로 공포를 조성하는 이란 당국의 행태, 이런 상황을 초래한 차별적 법과 사회를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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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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