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출신 김창훈이 지난달 27일 가수 김완선과의 2인전 ‘비욘드 프레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마리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정국 기자 |
“시는 글로 된 보석이에요. 누구나 소유할 수 있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죠.”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 마리에서 만난 김창훈이 말했다. 이곳에서 가수 김완선과 함께 2인전 ‘비욘드 프레임’을 열고 있는 그는 “시노래는 그 보석을 머리와 가슴에 옮겨 담게 해주는 통로”라고 설명했다.
밴드 산울림으로 출발해 반세기를 걸어온 그는 이제 시를 노래하고, 그림으로 사유한다. 오는 15일 서울 신사동 거암아트홀에서 여는 단독 공연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는 그가 5년에 걸쳐 완성한 시노래 1천곡의 결정판이다. 정현종, 윤후명, 송유미, 이어령 등 기성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1천곡의 노래를 만든 것은 가요계에서 보기 드문 대업적이다.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시와 시인입니다. 저는 그저 레드카펫을 깔아드리는 조연이에요.”
지난 27일 가수 김완선과의 2인전 ‘비욘드 프레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마리에서 만난 김창훈. 이정국 기자 |
2021년부터 이어온 시노래 작업은 그의 음악 인생의 새로운 장이었다. “새로 몰입할 매체를 찾다가 유튜브를 시작했고, 우연히 시집을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어요. 시를 필사하다 보니 멜로디가 저절로 흘러나왔죠. 하루에 4곡, 많을 때는 12곡까지 만든 날도 있었습니다.”
김창훈은 1977년 형 김창완, 동생 김창익과 함께 3인조 록밴드 산울림을 결성해 한국 대중음악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로서 ‘회상’ ‘독백’ ‘내 마음은 황무지’ ‘산할아버지’ 등 산울림의 대표곡을 만들어냈다. 서정과 실험이 공존했던 산울림의 음악 세계는 당시 한국 록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고, 이후 세대의 밴드 음악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또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김완선의 ‘오늘밤’ ‘나 홀로 뜰 앞에서’ 등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시를 향한 열정을 ‘이끌림’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시는 필사하자마자 곡이 불리고, 어떤 시는 며칠을 기다려야 음률이 오죠. 하지만 결국 시가 제게 다가옵니다.”
지난 27일 가수 김완선과의 2인전 ‘비욘드 프레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마리에서 만난 김창훈. 이정국 기자 |
공연 제목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는 정현종의 시 ‘방문객’에서 가져왔다. “제가 관객을 환대할 수도 있고, 관객이 시와 시인을 환대할 수도 있죠. 그 말이 공연의 의미와 너무 잘 맞았어요.” 공연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사랑, 삶과 죽음, 자연을 두루 품은 시들이 흐른다. “덜 알려졌지만 관객이 알아가면 좋을 시를 중심으로 선곡했습니다. 시작은 정현종의 ‘방문객’, 마지막은 이어령 선생님의 ‘정말 그럴 때가’입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조연’의 원칙을 고수한다. “시의 원문은 토씨 하나도 바꾸지 않습니다. 시인이 단어 하나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아니까요.” 무대 뒤 스크린에 시 전문을 띄우고, 관객은 그 시를 바라보게 된다. “공연 중간에는 박수를 삼가달라 부탁드릴 거예요. 리듬보다 시의 호흡에 집중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창훈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노래를 쌓아왔다. “유튜브는 제 도서관이에요. 가능한 한 원테이크로 녹음하고, 완성된 곡은 다시 듣지 않아요. 나도 모르게 복제할까 봐요.” 그는 “그게 나의 평생 아카이브이자, 시의 보석함”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더 만드는 일보다, 시노래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창훈 시노래 1천곡 기념 앨범 ‘당신, 아프지마’ 표지. 뒤지버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는 최근 시에세이집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기념 앨범 ‘당신, 아프지 마’, 그림 에세이집 ‘김창훈의 독백’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림은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고, 음악은 자기와의 화해 같아요. 추상을 택한 건 보이지 않는 걸 그리고 싶어서예요.” 오는 13일까지 열리는 ‘비욘드 프레임’에는 그의 회화 112점이 걸려 있다. “그림에는 제 인생이, 시노래에는 제 신앙이 들어 있습니다.”
산울림 시절과 지금의 차이를 묻자 그는 잠시 미소 지었다. “산울림의 음악이 형제들의 즐거운 놀이였다면, 시노래는 남을 위한 이타적인 음악이에요. 상업적 성과보다 보급과 전파가 먼저입니다.” 그는 지금도 매일 새벽 시를 읽고, 저녁이면 기타를 든다. “시를 읊다 보면 제 마음이 먼저 정화돼요. 그러니 이건 남을 위한 헌사이면서 동시에 제 구원 같아요.”
다음 꿈은 전국 문학관과 미술관을 도는 ‘노마드 시노래 투어’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의 마음속에 씨앗 하나만 남으면 됩니다. 시 한편을 품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건 이미 환대의 완성이지요. 저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남겠습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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