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건물 활용 컨설팅하는 업체
"지금은 새 건물에 사람 안 모인다"
"건물 역사성·공공성 살릴 방안 고민"
부산 동구에 위치한 '백제1927'. 1927년 4층짜리 '백제병원' 건물로 지어진 후 수 차례 용도 변경을 거쳐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초현실부동산 제공 |
"제가 이 건물을 산다고 했을 때만 해도, 간판이 100개는 붙어 있었어요. 세입자가 나가도 간판을 안 떼고 나가니까. 저는 그 수많은 간판 틈 사이로, 이 건물의 벽돌을 봤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죠. '100년쯤 지나면, 지금 우리가 매기는 가치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지 않을까?'"
부산 동구에 위치한 100년 된 붉은 벽돌 건물, '백제1927'의 정은숙 대표가 최근 출간된 '동네 의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건물 매입 비화다. 1927년, 개인 병원 용도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일본군 장교 숙소, 부산 치안사령부, 중화민국 임시 대사관, 예식장 등을 거쳐 현재 1층은 카페, 2층은 출판사의 문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벽돌로 만든 아치, 이중 다이아몬드 패턴 등 건물의 외형을 잘 간직하면서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개방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동네 의원'의 저자 '초현실부동산' 박성진 대표가 오래된 건물의 바람직한 변용으로 꼽는 사례 중 하나다.
박성진 '초현실부동산' 대표가 지인들과 공동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책방 '도시상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초현실부동산'은 오래된 건축물의 컨설팅과 동시에 건물에 얽힌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를 기록한다. 박 대표는 건물은 개인의 사유재산이지만 도시의 경관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우리 공동의 기억을 형성한다고 기록을 남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강예진 기자 |
오래된 건물은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이 지배하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자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건물주도 철거 뒤 신축 대 보존, 경제적 가치 대 사회문화적 가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십상. '초현실부동산'은 이들에게 오래된 건물이 오늘날 의미 있게 다시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부동산 컨설팅 법인이다. 리모델링을 우선으로 방법을 찾지만 발전적 해체나 매각을 제안하기도 한다. 동시에 공공 기록물 대상에서 제외된 오래된 건물의 생애사도 기록한다. 책 '동네 의원'은 그 결과물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책방 '도시상담'에서 만난 박 대표는 "돈과 숫자로만 점철된 부동산 현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그 현실 너머에 있는 장소의 꿈과 기억, 낭만을 찾아보자는 의미"였다고 설립 취지를 말했다. 건축가, 디자이너 등 전문가 다섯 명이 모여 2021년 설립된 '초현실부동산'은 지금까지 오래된 건물 약 30채의 새로운 쓰임을 찾고 이들에 얽힌 이야기를 발굴, 기록해왔다.
"20세기는 재건축, 재개발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시기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철거하고 신축한다고 예전처럼 사업성이 빠르게 채워지는 시대가 아니거든요. 아파트뿐만 아니라 상가도 공실이 엄청 많아요. 또 2030세대처럼 젊은 세대는 오히려 성수동이나 익선동같이 오래된 공간의 기억과 이야기에 열광하고요. 기존에 쌓인 이야기를 지우고 새 건물을 짓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 시대인 거죠."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갤러리 '공간썬더'. '초현실부동산'이 컨설팅하고 더사이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해 한옥 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양옥집을 한옥으로 새로 짓는 대신 리모델링했다. 김재경 제공 |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갤러리 '공간썬더'. '초현실부동산'이 컨설팅하고 더사이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해 한옥 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양옥집을 한옥으로 새로 짓는 대신 리모델링했다. 김재경 제공 |
그렇다고 오래된 건물의 보존만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보존과 철거(신축)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입장에 더 가깝다. 건물의 원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부동산 셈법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박 대표는 "특히 민간 건축물의 경우 역사적, 예술적 가치와 함께 경제적 잠재력을 봐야 건축물이 건강한 선순환 구조 속에 잘 활용되고 보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하기 전의 '페이지 명동' 3층 야외 공간. 노경 제공 |
'초현실부동산'이 컨설팅하고 더사이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페이지 명동'의 3층 야외 공간. 원래 쓰지 않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카페에 임대했다. 노경 제공 |
박성진 '초현실부동산' 대표가 공동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책방 '도시상담'. 주로 도시, 건축 관련 서적을 취급한다. 강예진 기자 |
실제로 건축주가 임대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엘리베이터 설치나 증축을 원할 때도 이를 무턱대고 반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건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도 새롭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 대안을 내놓는 식이다. 명동 성당 앞 옛 한국 YWCA 연합회관 건물인 '페이지 명동'도 건물의 원형적 가치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3층의 역사적 경관을 발굴해 '뷰 맛집' 카페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한 사례다.
박 대표는 "오래된 건축물의 활용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사례가 우리 사회에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공공에서는 '전시관', 민간에서는 '카페' 이 두 가지로 너무 쉽게 쓰임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공유 오피스, 사옥, 도서관 등 건물의 역사성과 공공성을 살리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네 의원·초현실부동산 지음·사이트앤페이지 발행·356쪽·2만5,000원 |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