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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민간 국악단체’ 헌정곡 만든 현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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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민간 국악단체’ 헌정곡 만든 현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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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민간 국악 단체 ‘청풍승평계’ 존재를 세상에 알린 손도언 뉴스1 기자. 손도언 기자 제공

국내 최초 민간 국악 단체 ‘청풍승평계’ 존재를 세상에 알린 손도언 뉴스1 기자. 손도언 기자 제공


“청풍의 바람 따라 소리 모여 피네. 삼십삼현이 함께 첫 길을 열어 가야금 위해 새봄이 흐르고…”



국악 창작곡 ‘청풍승평계’ 첫 부분이다. 국악 ‘청풍승평계’는 손도언 뉴스1 기자가 노랫말을 쓰고, 김병섭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 ‘청풍승평계’는 1893년(고종 30년) 국악 애호가 등이 꾸린 우리나라 최초 국악 예술단으로 꼽힌다. 3대 악성 우륵 선생의 고향인 청풍(지금의 제천) 지역 국악 애호가·유지 등 33명이 만들었다.



손 기자는 “132년 전 우륵 선생을 기리며 청풍승평계를 만든 선현의 얼을 기리려고 헌정곡 ‘청풍승평계’를 만들었다. 흥겨운 굿거리장단으로 쉽게 국악과 청풍승평계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도언 기자가 노랫말을 쓴 청풍승평계 헌정곡. 손도언 기자 제공

손도언 기자가 노랫말을 쓴 청풍승평계 헌정곡. 손도언 기자 제공


20여년 동안 제천·단양 등 충북 북부지역 등에서 기자로 일하는 손 기자는 판소리·국악 전문가다. 대학에서 한국 음악을 전공한 그는 틈틈이 국악 발굴·계승에 힘썼다. 음성을 중심으로 활동한 중고제 명창 염계달 선생을 발굴한 데 이어, ‘청풍승평계’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도 그다. 그는 지난 2021년 3월 ‘10년간의 취재 기록-판소리 원류는 충청도다’(중도일보)를 보도했는데, 처음으로 ‘청풍승평계’를 알렸다. 그는 “‘제천지역에 청풍승평계가 있었다’는 한 줄 기록 외에 별다른 문헌·기록이 없어 ‘제천군지’, 전국의 국악인, 문헌 등을 뒤진 끝에 ‘청풍승평계’의 실체를 확인했다. 그때 전율이 지금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을 보면, ‘청풍승평계’는 1893년 33명으로 출발해 1918년 40여명으로 늘어나는 등 지역 안팎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63년 ‘제천군지’에 기록된 ‘청풍승평계 규약’이 재미있다. ‘매월 16일 교련(연습)한다’, ‘돈을 갹출해 악기를 조성·수리한다’, ‘술주정·싸움하면 중벌로 다스린다’, ‘매년 봄·가을에 유람하고, 연주회를 한다’ 등이다. 그는 “40여명이면 지금의 국악 관현악단 규모이고, 춘추 연주는 정기연주회를 뜻한다. 우륵 선생을 기리는 뜻의 ‘우륵 서포터즈’, ‘우륵 팬클럽’을 넘어 어엿한 국악 단체로 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청풍승평계’는 한국전쟁 피란 등으로 회원이 흩어지면서 운영을 멈추고, 제천 청풍면 물태리 평등사에 악기 등을 보관했지만 1983년 충주댐 건설로 평등사가 악기와 함께 수몰되면서 존재가 사라졌다.



제천문화원은 ‘청풍승평계’의 맥을 찾고, 잇는 데 힘쓴다. 지난 2022년 ‘청풍승평계’의 역사적 의의 등을 밝히는 세미나를 한 데 이어 지난 1일엔 ‘132년 전통의 맥을 잇다’를 주제로 ‘청풍승평계’ 헌정 공연을 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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