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유스퀘이크에서 열린 브런치 10주년 기념 팝업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종이책으로 출간된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80만부), ‘90년생이 온다’(51만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50만부), ‘공부머리 독서법’(50만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30만부).
이 책들의 공통점은? 모두 카카오의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묶어 출간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베스트셀러 제조기’ ‘21세기 신춘문예’라는 별명을 가진 브런치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열었다. 지난 16~19일 서울 종로구 유스퀘이크에서 열린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작가의 꿈’에는 많은 시민의 발길이 몰렸다. 행사장에는 브런치가 걸어온 길과 역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 등이 전시됐는데, 벽 한면에 마련된 방명록에는 ‘꿈을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희망이 되어줬다’ ‘20주년에는 내 책도 이곳에 전시되고 싶다’는 등의 글들이 빽빽이 쓰여 있었다.
브런치가 일궈낸 10년의 성과는 눈부시다. 올해 9월 기준 브런치에 등록된 작가는 9만5천명, 이들이 작성한 글은 800만개를 넘어섰다. 1분마다 2편의 글이 올라오는 셈이다. 브런치에 선보인 글이 종이책 출간으로 이어진 브런치 원작 도서는 1만권 이상이며, 이 중 베스트셀러 상위 10권의 누적 매출은 470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결과는 ‘글을 작품으로 만드는 공간’이라는 슬로건 아래, 글쓰기와 출판을 적극적으로 연결한 브런치의 노력 덕분이다. 2015년 6월 론칭 3개월 만에 ‘제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연 이래 지금까지 총 12회에 걸쳐 6만3천편의 응모작 중 359편의 수상작을 뽑아 200여군데의 출판사와 연결해 책 출간을 지원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와 오디오북 출판 프로젝트도 진행해 작가들의 창작 생태계를 확장했다. 브런치는 카카오의 사회공헌활동(ESG)의 일환 사업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별도의 수익을 취하지는 않는다.
지난해부터는 작가 후원 모델인 ‘응원하기’를 오픈해 독자들이 응원 댓글과 함께 후원금을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올 9월까지 누적 응원 금액은 4억5천만원을 기록했다. 올해 오픈한 ‘브런치 작가 멤버십’은 유료 콘텐츠 구독 서비스로 지난 6월 사전 모집에만 3천명 이상의 작가들이 신청하며 열띤 호응을 나타냈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유스퀘이크에서 열린 브런치 10주년 기념 팝업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브런치 1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몇가지 의미 있는 변곡점이 있다.
2015년 6월 오픈 이후 초기 3~4년은 기획자와 디자이너 등 직장인들이 ‘스타트업’ ‘아이티(IT)’ ‘퇴사’ ‘여행’ 등을 주제로 글을 쓰는 ‘업세이’(業+에세이)의 전성기였다. “대한민국에서 퇴사하면 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말이 돌 정도로 퇴사자들의 열기가 뜨겁기도 했다.
2019년 말 코로나19의 확산은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등록 작가 수가 급증하고, 주요한 열쇳말이 ‘자기 계발’과 ‘심리’ ‘내면 탐구’로 이동했다. 이때부터는 책을 출간한 이력이 있거나 책 출간을 목표로 하는 작가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고, ‘자기 돌봄’을 추구하는 독자들이 몰려들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성공은 브런치가 에세이를 넘어 소설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2021년 브런치에 연재된 뒤 이듬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 작품은 전세계 30개 이상 언어로 50여개국에 출간되며 ‘브런치발 케이(K)-스토리’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이런 성과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브런치로 입성시키거나 기존의 에세이 작가들에게 소설을 쓰도록 자극해 브런치를 시와 소설까지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론칭 때부터 브런치를 책임져온 오성진 리더는 이렇게 회상했다. “10년 전 ‘작가님의 글 한편 한편을 아름답게 남겨드리겠다’며 작가들의 등록을 독려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어요. 당시 사람들이 자투리 시간에 카드뉴스를 넘겨보는 스낵컬처의 시대여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꺼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거든요. 시장 조사에서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로망이 많다는 걸 확인했고, 그래서 론칭 직후 ‘크리스마스에 당신의 글이 책으로 출간됩니다’라며 바로 출판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이제 출판사들은 브런치를 작가 발굴의 보고로 삼는다. 많은 편집자들이 아침 출근 뒤 브런치를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 리더는 “예전에는 작가와 출판사가 다른 섬에 살며 원고를 우편으로 주고받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브런치가 그 사이에 다리를 연결해드린 것 같다”고 자평했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유스퀘이크에서 열린 브런치 10주년 기념 팝업전시회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주어진 주제에 관한 글을 적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브런치가 일정 수준 이상의 원고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작가 선정 시스템’ 덕분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선 먼저 작가 신청을 하고 승인 심사에 합격해야 한다. 합격을 목표로 7전8기 도전하는 이들도 많다. ‘브런치 합격 비결’을 다룬 전자책이 여럿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오 리더는 의외의 말을 들려줬다. “원래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꿈꾸면서 이 플랫폼을 만들었기 때문에 작가 선정 시스템을 이렇게 오래 가져갈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초기에는 좋은 글을 써줄 수 있는 작가를 찾기 위해 이런 틀을 만들었지만, 언젠가는 글쓰기를 원하는 모든 분들을 위한 플랫폼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작가에 선정되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성장하는 분들을 보면서 이 시스템이 지속적인 글쓰기에 좋은 장치인 거 같아서 당분간은 유지하려고 합니다.”
오 리더가 말하는 합격 기준은 명확하다. “필력보다는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를 봅니다. 브런치에 글 하나 쓴다고 해서 독자 수십만명이 와서 읽는 건 아니거든요. 독자가 없으면 금방 지치기 때문에 독자라는 동기 부여가 없어도 계속 쓸 수 있는 분들을 선정합니다.”
이 꾸준함은 결국 작가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된다. 10년 전 론칭 때 작가로 등록한 고수리 작가는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을 통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출간한 이래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며 총 7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브런치에 남긴 기록은 초고가 되고, 초고는 책이 되었다”며 “브런치는 나에게 지치지 않고 계속 쓸 수 있었던 초심과 초고, 그리고 독자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작가 노트’와 같다”고 말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쓴 황보름 작가도 “무슨 글을 써야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절부터 브런치에 많은 글을 썼고 계속 쓰다 보니 출간된 책 5권 중 3권은 브런치에서 시작한 것들”이라며 “그중 ‘휴남동 서점’은 브런치가 없었다면 아마 출간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선 등단하지 않은 작가가 소설을 출간하는 일은 요원한데다 특히 이 소설을 쓴 2018년만 해도 에세이스트가 소설을 출간하는 일은 별로 없어서 출간을 생각하지 못했다”며 “브런치 공모전이 아니었더라면 이 소설은 여전히 소수의 브런치 독자분들에게 읽히는 정도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브런치에 연재한 ‘반려식물 200개 온실 같은 집’이 363만뷰를 기록하며 국내 최초의 플랜테리어 도서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을 펴낸 정재경 작가에게 브런치는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준 매개체다. “저에게 브런치는 호흡기가 약한 아들을 위해 200여개의 식물과 함께 살며 기록한 이야기가 시작된 곳입니다. 독자들의 공감에 힘입어 작가의 싹을 틔웠고, 브런치 추천작으로 선정돼 첫 책을 펴내며 ‘식물 인문학 전문가’라는 정체성을 얻었어요. 그 뒤 총 7권의 책을 쓰면서 브런치에 쌓인 기록은 자연과 예술, 창조성을 통해 나를 찾는 교육 브랜드 ‘초록생활연구소’ 철학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내가 머물던 세계를 작가에서 비즈니스로 확장시켜준 곳이죠.”
무엇보다 브런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을 작가로 성장시킨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주부, 소방관, 콜센터 직원, 자영업자가 브런치를 통해 유명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다. 오 리더는 “예전에는 독자들이 위인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이 쓴 책을 읽었다면 브런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브런치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피드백은 ‘브런치 덕분에 직업을 얻었습니다’ ‘브런치 덕분에 취업을 했습니다’ ‘브런치 덕분에 꿈을 이루었습니다’라는 피드백”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10년, 브런치의 비전은 무엇일까? 오 리더는 “이제는 ‘읽는 사람’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브런치를 오픈할 때 세운 미션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세상에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도록 기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은 어느 정도 완성된 거 같아서 앞으로는 세상에 감동과 영감을 주기 위해 독자에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독자는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완성하는 존재니까요.”
한편, 브런치에 대한 출판계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가운데 아쉬운 면에 대한 주문과 지적도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꾸준히 글을 연재하게 한 뒤 심사를 통해 우수한 작품을 출간하게 하고 또 마케팅을 통해 판매까지 지원함으로써 창작자들의 열광적인 참여를 끌어낸 점에서 브런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글쓰기 플랫폼”이라며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글쓰기를 독려했다는 점에서 표창을 받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백 대표는 “앞으로는 쓰기뿐만 아니라 읽기 문화 확장을 위해 플랫폼의 영향력을 활용해주길 바란다”며 “예컨대 ‘브런치북 독서지원 프로젝트’ 같은 독서 진흥 사업도 함께 추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순철 북칼럼니스트는 “작가가 될 수 있는 진입 장벽을 낮춰줘서 다양한 작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게 장점인 반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보니 너무 신변잡기적인 책도 출간되는 등 책 내용의 수준을 좀 떨어지게 만든 면도 한번쯤은 짚어봐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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