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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부고니아’ 할리우드서 재탄생한 한국의 저주받은 명작, 무엇이 달라졌을까?

스포츠W 임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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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부고니아’ 할리우드서 재탄생한 한국의 저주받은 명작, 무엇이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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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가을]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하루가 다르게 병들어가고 있는 지구, 거대 바이오 기업의 물류센터 직원 ‘테디’(제시 플레먼스)는 부업으로 벌을 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벌이 점점 사라지는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외계인의 지구침공 계획 때문이며, 사장 ‘미셸’(엠마 스톤)이 그 외계인이라 굳게 믿는다. 이에 테디는 함께 사는 사촌 동생 ‘돈’(에이든 델비스)과 함께 오랜 준비 끝에 미셸을 납치하는 데 성공하고, 지하실에 미셸을 감금한 채 지구를 찾아온 이유와 앞으로의 음모를 캐묻기 시작한다.



‘저주받은 명작’이라 불린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2003)가 22년 만에 새롭게 재탄생했다. 2018년 추진한 리메이크 프로젝트로 완성된 ‘부고니아’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연출을, 아리 애스터가 제작을 맡아 원작에 충실하고도 신선하게 관객을 다시 만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주요 인물의 변화다. 그중에서도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강사장’(백윤식)의 성별·나이 반전은 작품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22년 전 강사장이 비리와 스캔들이 넘쳐나는 고압적인 중년 남성으로서 전형적이며 평면적인 악을 표현했다면 지금의 미셸은 젊은 여성 CEO로서 다양성을 강조하고 직원들에게 저녁 있는 삶을 권장하는 등 열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기업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차가운 자본가이며 위선자임을 표현하며 보다 현실적이며 복합적인 악을 만들어냈다.




‘강사장’이 바뀐 만큼 그를 상대하는 ‘병구’(신하균)와 ‘순이’(황정민)도 새롭게 변신했다. 납치극을 이끌어가는 ‘병구’에게서 맑은 눈의 광기가 묻어났다면, 이번 영화의 ‘테디’는 투박하고 고집불통인 곰 같은 캐릭터로 숨 막히는 압박감을 선사한다.

순이 역시 사촌 남동생 ‘돈’으로 바뀌어 개별의 서사를 보여주기보다는 테디의 사이드킥, 감초 역할에 집중한 느낌이다. 이외로도 추반장과 병구의 엄마도 등장은 하지만 비중이 축소되었으며, 김형사를 비롯해 다수의 인물이 삭제되며 주연 3인방을 비추는 데 힘을 실었다.

리메이크 과정에서 남성 피해자, 남-녀 가해자로 이뤄졌던 구도가 여성 피해자, 남-남 가해자로 뒤바뀐 것이 알려지며 원작 팬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남성 다수가 여성을 납치해 온갖 엽기적인 고문을 가하는 게 자칫하면 뻔하고 폭력적이기만 한 구도로 비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러한 반응을 제작 단계서부터 예상했던 것인지 폭력 수위는 원작에 비해 많이 약화된 편이다. 납치 작전을 시작할 때부터 테디와 돈은 잡념을 없앤다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행하고, 원작에서 행해진 각양각색의 고문은 최대한 축소해 짧고 굵게 처리한다. 물론 청불 딱지가 붙은 만큼 살점이 튈 정도의 유혈 장면은 남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원작의 큰 틀은 대부분 지키고 있으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부터 왁자지껄하게 시작했던 B급 정서의 코믹 스릴러는 보다 정제되고 차분한 톤의 심리 스릴러로 바뀌어 테디와 미셸 사이에서 벌이는 설전으로 긴장감을 팽팽히 조이고, 그 과정에서 덜어내진 개그는 피식피식 실소를 흘리게 만드는 블랙 유머로 채워 넣었다.

‘부고니아’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음모론자들, 이익 계산에 바빠 타인에 대한 존중과 양심을 망각한 이들을 투영하며 점점 병들어가는 우리 사회를 꼬집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요르고스 감독만의 스타일로 완성한 결말이 한편으로는 통쾌하게 느껴진다.


한편 ‘부고니아’는 오는 11월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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