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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사건 누명’ 故윤동일씨, 33년 만에 무죄

조선일보 수원=김수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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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사건 누명’ 故윤동일씨, 33년 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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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인 ‘강제추행치상’ 사건 재심 선고
2020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재심이 열렸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뉴스1

2020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재심이 열렸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뉴스1


“주문, 피고인은 무죄. 판결이 많이 늦었습니다.”

30일 오후 2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법 301호.

감색 항공 재킷을 입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남성이 차분한 표정으로 재판장을 바라봤다. 고(故) 윤동일씨의 형 윤동기씨다. 사망한 동생을 대신해 재심 판결을 들으러 법정을 찾은 것이다.

윤동일씨는 경기도 화성 일대서 벌어진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중 9차 사건 용의자로 몰렸다가,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또 다른 성범죄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재심 재판을 받게 됐다. 이날 확정 판결이 내려진 지 33년 만에 윤동일씨의 억울한 누명이 풀린 것이다.

이 사건을 심리한 형사15부 재판장 정윤섭 부장판사는 이날 “피고인이 경찰에서 한 자백은 불법 구금과 강압 수사로 인한 정황이 있는 점 고려하면 신빙성이 없다”며 “각 증거들은 증거 능력이 없고, 공소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 범죄 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했다. 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고통받으셨을 피고인과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검찰도 지난달 9일 마지막 재판에서 “오랜 시간 불명예를 안고 지낸 피고인과 그 가족에게 사죄드린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했다.


윤씨는 1991년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돼 그해 4월 23일 수원지법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윤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으나 모두 기각돼 1992년 1심 판결이 확정됐다.

윤씨가 이 혐의로 입건된 당시, 그는 이춘재 살인사건 9차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었다. 다행히 9차 사건 피해자의 교복에서 나온 체액과 윤씨의 혈액 감정 결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오면서 그는 살인 혐의를 벗었다.

윤씨 측은 당시 수사기관이 이춘재 사건과는 별개로, 강제추행치상 혐의 사건을 조작해 기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씨는 이 사건으로 수개월간 옥살이를 해야 했으며, 집행유예 선고로 출소한 이후 암 판정을 받았다. 그는 결국 만 26세이던 1997년 사망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년 12월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불법 체포·가혹 행위·자백 강요·증거 조작 및 은폐 등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고, 법원은 작년 7월 재심 결정을 내렸다.

고(故) 윤동일씨의 형인 윤동기씨 등이 3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법원종합청사 앞에서 무죄 판결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김수언기자

고(故) 윤동일씨의 형인 윤동기씨 등이 3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법원종합청사 앞에서 무죄 판결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김수언기자


이날 선고가 끝난 후 취재진 앞에 선 윤동기씨는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참았다”며 “오늘 무죄 선고가 났으니, 동생도 이제 떳떳한 마음으로 홀가분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사건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당시 경찰이 고문과 가혹 행위, 불법 체포 등으로 자백을 종용했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의 불법을 바로잡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이춘재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분이 20여명이 되는데, 오늘 이 사건 결과를 지켜보시는 피해자분이 계시다면 국가를 상대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재판에는 ‘이춘재 연쇄 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2020년 32년 만에 무죄를 받은 윤성여씨도 함께 나왔다.

윤성여씨는 “고인이 되신 분은 동네 후배”라며 “하늘나라에서 아마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윤동기씨는 2023년 서울중앙지법에 국가를 상대로 5억3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도 제기했다.

[수원=김수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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