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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거칠고 까끌까끌한 예술도 필요하다

조선일보 김일송 책공장 이안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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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거칠고 까끌까끌한 예술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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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공연되는 100대가 넘는 토이 키보드로 구성된 라이브 사운드 퍼포먼스 '100개의 키보드'. /사진가 줄리에타 세르반테스, SPAF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공연되는 100대가 넘는 토이 키보드로 구성된 라이브 사운드 퍼포먼스 '100개의 키보드'. /사진가 줄리에타 세르반테스, SPAF


“여러분, 당장 생각나는 예술가 이름을 말해볼래요?”

강연 때 늘 던지는 질문 중 하나다. 내 강연은 주로 공연예술에 관한 것이지만, 청중은 대체로 화가의 이름을 많이 거명한다. 모네와 마네, 반 고흐, 피카소는 특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그럴 때, 이렇게 다시 묻는다.

“여러분이 거론한 이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그러고 덧붙인다. “대체로 새로운 유파를 창시한 화가들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예술에,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닐까요. 스승이나 선배가 닦아 놓은 길 위에서 더 멀리 간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닦은 사람.”

물론, 기성의 흐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일가를 이룬 이도 예술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존에 없던 흐름을 만들어낸 이를 더 높이 평가한다. 그런 면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생경한 작업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025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공연되는 '에세즈 메세즈: 당나귀들의 반란'(asses.masses)은 '동물농장', '포켓몬', '파이널 판타지'가 교차하는 듯 게임과 공연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으로 약 7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집단 참여형 체험 공연. 관객이 함께 플레이하며 서사를 완성해가는 작품이다.  /SPAF

2025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공연되는 '에세즈 메세즈: 당나귀들의 반란'(asses.masses)은 '동물농장', '포켓몬', '파이널 판타지'가 교차하는 듯 게임과 공연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으로 약 7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집단 참여형 체험 공연. 관객이 함께 플레이하며 서사를 완성해가는 작품이다. /SPAF


예를 들어 100개의 키보드를 이용한 사운드 퍼포먼스 ‘100개의 키보드’는 통상의 음악 퍼포먼스에 기대하는 리듬이나 멜로디가 없는 게 특징이다. 관객들은 100개의 키보드에서 나오는 음들이 중첩되며 간섭하고 공명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낙산공원 전망대에서 진행된 ‘위트니스 스탠드 서울: 소리의 기념비’에는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노을 지는 풍경을 보며,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과 시민들의 짧은 인터뷰가 삽입된 라이브 사운드를 듣는다. 그게 전부다. 한편, 11월에 공연을 앞둔 ‘에세즈, 메세즈: 당나귀들의 반란’은 게임 방식을 결합한 공연이다. 이 공연의 관객은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기계에 맞서는 여정에 동참하여야 한다. 관객에 따라서는 ‘이것도 예술인가?’ 싶을 수도 있다.

최석규 예술감독은 이를 ‘얽힘과 마찰’이라는 두 단어로 압축하는데, 그게 어쩌면 앞선 예술에 대한 기대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미끈한 혹은 매끈한 것 말고, 거칠고 까끌까끌한 것. 다시 말해, 기성의 예술, 상식, 세계관에 마찰을 일으키는 그런 작품도 필요하다고 말이다. 마찰이 없다면 불꽃도 없다. 어쩌면 예술은, 그 불꽃으로 어둠을 비추는 일일 것이다.

[김일송 책공장 이안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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