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순방 길 기내서 알쏭달쏭 언급
핵보유국 인정 여부 흐리며 회동 요청
동기 부족한 金, ‘선전 효과’ 노릴 수도
“나는 북한의 모든 것을 안다. 하지만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사이가 좋다.”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9일부터 이틀간 한국을 찾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길 전용기(에어포스원) 내에서 취재진에게 알쏭달쏭한 언급을 했다. ‘북한을 핵보유국(뉴클리어 파워)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고 대답했다. 인정 여부와는 별개로 미국은 북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는 취지였다. ‘손바닥 보듯 훤하지만 지도자와 사이가 좋으니 봐주고 있다’는 식의 은근한 협박으로도 들릴 수 있는 발언이었다.
25일(미국 현지시간) 백악관 공동 취재단에 따르면 전날 밤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순방 출장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전용기 내에서 공식 일정에 없는 회동을 김 위원장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김 위원장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가 연락해 온다면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핵보유국 인정 여부 흐리며 회동 요청
동기 부족한 金, ‘선전 효과’ 노릴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 차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길에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나는 북한의 모든 것을 안다. 하지만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사이가 좋다.”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9일부터 이틀간 한국을 찾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길 전용기(에어포스원) 내에서 취재진에게 알쏭달쏭한 언급을 했다. ‘북한을 핵보유국(뉴클리어 파워)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고 대답했다. 인정 여부와는 별개로 미국은 북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는 취지였다. ‘손바닥 보듯 훤하지만 지도자와 사이가 좋으니 봐주고 있다’는 식의 은근한 협박으로도 들릴 수 있는 발언이었다.
25일(미국 현지시간) 백악관 공동 취재단에 따르면 전날 밤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순방 출장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전용기 내에서 공식 일정에 없는 회동을 김 위원장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김 위원장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가 연락해 온다면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외교 창구를 통한 공식 요청은 없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락할 방법이 딱히 없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그들(북한)은 핵무기를 많이 갖고 있지만 전화 서비스는 거의 없다”며 “인터넷 말고는 (연락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나는 열려 있다”며 “그는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를 만나는 데에) 100% 열려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게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라는 해석에는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려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에 열려 있느냐’는 질의에 “나는 그들이 일종의 핵보유국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은, 나는 그들(북한)이 얼마나 많은 무기를 갖고 있는지 알고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들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글쎄 (그러기보다) 나는 그들이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거듭 자신의 진의를 환기했다. 핵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핵보유국 발언은 일단 방한 기간 중 김 위원장과의 ‘깜짝 회동’을 성사시키기 위한 유인책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회의 때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 미국이 비핵화 집념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파악했다며 일단 현실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핵보유국 지위 인정까지 밀고 나아가지는 않았다. 백악관 관계자도 24일 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받아들이되 ‘비핵화 포기 선언’으로 읽힐 만한 언급은 피하며 절충을 택한 것이다. 오히려 “북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얘기로 미국의 정보력을 과시하며 우회적으로 북한을 압박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회동 제안에 호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북미 정상이 마지막으로 만난 2019년과 현재 김 위원장 위상이 확연히 다르다는 게 핵심 근거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북한은 제재 해소가 절실할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했다. 그러나 이후 6년간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고도화하는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와의 밀착 기회로 삼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관계도 회복한 모양새다. 협상 동기가 예전보다 부족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비핵화 논의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하기만 한다면 김 위원장은 높아진 자신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효과적으로 선전할 수 있다. 조비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25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북한의 핵 지위를 기정사실로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