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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왕, 종교개혁 이후 500년 만에 교황과 함께 시스티나 대성당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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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왕, 종교개혁 이후 500년 만에 교황과 함께 시스티나 대성당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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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측근 브로커' 알선수재 1심 징역 2년
1534년 헨리 8세 수장령 이후 처음
서로 선물 교환하고 영어로 기도
영국 왕실도 교황에 훈장 수여


레오 14세 교황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3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함께 예배를 올린 뒤 밖으로 나와 악수하고 있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레오 14세 교황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3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함께 예배를 올린 뒤 밖으로 나와 악수하고 있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 레오 14세와 함께 예배했다. 영국 군주와 교황이 함께 기도하는 건 영국 교회가 가톨릭과 공식 단절을 선언한 이후 약 500년 만에 처음이다.

영국 BBC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찰스 3세와 레오 14세는 23일(현지시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함께 기도를 올렸다. 미국 출신인 레오 14세는 영어로 기도문을 읊었고, 이후 라틴어 성가가 성당에 울려 퍼졌다.

이는 16세기 헨리 8세 국왕이 수장령을 선포해 로마 가톨릭교회와 공식 단절을 선언한 지 약 500년 만의 일이다. 찰스 3세는 지난 세 명의 교황과 만난 적이 있지만, 함께 기도를 올린 적은 없었다.

레오 14세 교황이 23일 바티칸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앞에서 예배를 집전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참석했는데, 영국 국왕이 교황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500년 만이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레오 14세 교황이 23일 바티칸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앞에서 예배를 집전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참석했는데, 영국 국왕이 교황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500년 만이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예배에 앞서 찰스 3세는 "이곳에 방문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고, 레오 14세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양측은 예배 후 공식 선물도 교환했는데, 찰스 3세는 '참회왕' 성 에드워드 성화를, 레오 14세는 시스티나 대성당 모자이크 작품 '전능하신 그리스도' 축소판을 서로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예배 후 기후단체 대표들과 함께하는 지속가능성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이후 찰스 3세 부부는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했는데, 이 곳에서 그는 라틴어 문구로 '하나가 되리라(Ut unum sint)'라고 쓰인 의자를 선물로 받았다. BBC는 "이 의자는 찰스 3세가 다시 바티칸에 방문할 때, 또는 이후 후계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성당에 보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3일 이탈리아 로마의 성바오로 성당에 방문헤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가 앉아 있는 의자는 성당 측에서 선물로 준비한 것이다. 로마=로이터 연합뉴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3일 이탈리아 로마의 성바오로 성당에 방문헤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가 앉아 있는 의자는 성당 측에서 선물로 준비한 것이다. 로마=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왕실에서는 레오 14세에게 두 가지 영국 훈장을 수여했다. 버킹엄궁은 레오 14세를 윈저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 '교황의 형제(Papal Confrater)'로 임명하고, 외국인에게 수여 가능한 영국 최고 훈장인 바스 훈장 중 가장 등급이 높은 기사 대십자 훈장을 수여한다고 이날 밝혔다.


1534년 헨리 8세는 교황 클레멘트 7세가 자신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자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분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영국 국왕은 성공회의 수장 지위로 군림했다. 헨리 8세 이후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 통치 기간 동안 영국에선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 갈등이 이어졌고, 수백 명의 신자들이 처형 또는 화형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성공회와 가톨릭 관계는 꾸준히 개선됐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교회법 신학자인 제임스 호키 성공회 목사는 로이터에 "이 순간은 일종의 역사 치유"라며 "한 세대 전만 해도 불가능했을 장면으로, 지난 60년 간의 대화를 통해 우리 교회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