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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00시간 노동이 일상”…‘AI’ 전쟁터에 던져진 근로자들

이데일리 방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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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00시간 노동이 일상”…‘AI’ 전쟁터에 던져진 근로자들

서울맑음 / -3.9 °
주 80~100시간 유행처럼 번져…계약서에 못박기도
'눈에 보이는' 발전 속도에 흥미…자발적 동참하기도
中재평가도 영향…고강도 업무, 中성장 동력 간주
'996' 문화 실리콘밸리 재현…"21세기 군비 전쟁"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AI) 연구자와 개발자들이 주당 최고 100시간씩 일하는 극단적 근무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AI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다. 일부 기업들은 ‘전시 상황’이라 부를 만큼 높은 업무 강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AFP)

(사진=AFP)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구글, 메타, 오픈AI, 앤스로픽 등 실리콘밸리 주요 AI 기업 핵심 개발자들은 거의 전원 출근 근무 체제를 유지하며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글로벌 AI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진 영향이다. xAI, 오픈AI, 앤스로픽, 구글, 메타 등은 초거대 모델 개발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술·인재·연산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이미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은 상태여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실정이다. 또한 미국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WSJ은 “실리콘밸리 주요 AI 연구소들에선 최고 연구원들과 임원들이 주당 80~100시간씩 일하고 있다. 여러 최고 연구원들은 이러한 상황을 전쟁에 비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회사는 주말에도 식사를 제공하고, 프로젝트 단위로 ‘캡틴’을 지정해 모델 개발을 24시간 감시한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일대 레스토랑 포장 주문 데이터는 토요일 정오부터 자정까지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AI 스타트업 직원들이 주말에도 근무 중임을 시사한다.

일부 스타트업은 채용 계약서에 ‘80시간 이상 근무’ 조건을 아예 못박았다. 구글 딥마인드의 마다비 세왁 연구원은 “모두가 항상 일하고 있다. 멈출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마다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새벽에도 실험을 반복한다”고 털어놨다. 한 스타트업 경영자도 “일주일 중 일요일 점심을 마치면 모두 사무실로 돌아간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 몇 년이나 걸렸던 AI 모델의 개발 주기가 며칠로 단축된 영향도 있다. 이 때문에 연구자·개발자들이 개인적 재미·만족·호기심 등을 이유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례로 앤스로픽의 연구 과학자 조시 배츠슨은 WSJ에 매일 수십건의 실험 데이터를 점검하고, 동료들과 대화하기 위해 슬랙(Slack) 채널을 밤늦게까지 모니터링한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20년치 과학적 진보를 불과 2년 만에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다. AI 시스템의 놀라운 발전이 몇 달마다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과학적 질문이다.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진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대한 개인적 흥미를 내비치면서도, AI 연구·개발 경쟁이 ‘속도전’이라는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각에선 높은 업무강도에 대한 비판 및 우려 목소리가 나오지만, 연구자들은 오히려 일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배츠슨은 “우리가 모델을 이해하는 속도가 변화 속도보다 빨라야 한다”며 “그 벽을 넘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MS의 아파르나 체나프라가다 최고제품책임자도 “AI 시대에는 목요일에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나오면 금요일에 이를 제품에 적용하려 든다. (이미) 연구와 시장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졌다”며 속도전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한편 새롭게 변화한 실리콘밸리의 근무 행태는 과거 중국 IT 업계가 초과노동 논란을 빚었던 ‘996’(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문화를 연상시킨다. 최근 미국 AI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중국의 고강도 근무 환경이 ‘경쟁력의 상징’으로 재평가받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국산 제품을 ‘모조품’으로 폄하하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올해 1월 ‘딥시크 쇼크’를 계기로 중국식 혁신을 재평가하고 있다. 신문은 “경영진들의 중국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전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최대 벤처캐피털(VC) 중 하나인 앤드리슨 호로위츠는 최근 홈페이지에서 “중국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이 우리는 과거에 머물 위험이 있다. 이미 많은 산업에서 미국은 중국에 뒤처져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