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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옥죄어오는 유령들의 말…양손프로젝트 연극 '유령들'

연합뉴스 최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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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옥죄어오는 유령들의 말…양손프로젝트 연극 '유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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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 원작 희곡 심리극으로 각색…인물 심리 표현한 조명·무대 연출 눈길
연극 '유령들' 공연사진[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극 '유령들' 공연사진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유령이다, 유령들. 그들이 살아 돌아왔어."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 오수왈과 시간을 보내던 알빙 부인은 아들에게서 사별한 남편과 똑 닮은 모습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생전 모범이 되지 못한 남편에게서 아들을 떼어놓으려 일곱 살배기 아들을 해외로 유학 보냈던 부인은 아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아버지처럼 행동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급기야 남편의 유령이 집 안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지난 16일 LG아트센터 U+스테이지에서 개막한 양손프로젝트 신작 연극 '유령들'에서 관객의 비명을 끌어내는 공포영화 속 유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빙 부인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유령은 인물이 경험할 당혹감과 무력감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었다.

'유령들'은 노르웨이 출신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유령'(Gengangere)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노르웨이어 원제 'Gengangere'(갱강어)는 '다시 걷는 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라지지 않고 돌아오는 사람이나 현상'을 뜻한다.

작품은 남편의 이름을 딴 고아원을 짓고 있는 알빙 부인이 고아원 개원 전날 겪는 일을 그린다. 고아원이 문을 열면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알빙 부인과 그에게 끊임없이 남편을 떠오르게 하는 주변 인물의 갈등이 주된 줄거리다.


연극 '유령들' 공연사진[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극 '유령들' 공연사진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출 박지혜와 배우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으로 구성된 4인조 공동창작집단 양손 프로젝트는 입센의 원작을 알빙 부인을 중심에 둔 심리극으로 연출했다. 원작은 사회와 종교적 규범 아래서 소외당하는 개인의 내면을 조명했는데, 양손프로젝트의 연극도 원작의 설정이나 주제 의식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작품 속 5개 배역은 양조아 배우가 알빙 부인 역을 전담한 가운데 손상규와 양종욱이 다른 4개의 배역을 2개씩 나눠 연기했다. 손상규는 오수왈과 고아원 공사에 참여한 목수 엥스트란드를, 양종욱은 고아원 사업을 총괄하는 만데르스 목사와 알빙 저택의 하녀 레지나 역을 각각 맡았다.

손상규와 양종욱은 특정한 배역을 연기하지 않을 때도 무대를 벗어나지 않고 유령으로 등장해 알빙 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유령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알빙 부인이 과거에 들었던 누군가의 말, 부인을 위축시키는 종교적 규범 등을 입으로 옮기며 시시각각으로 부인을 옥죄어갔다.


그 과정에서 무대의 사면을 둘러싸도록 객석을 배치하고 점차 무대 조명을 줄여가는 연출은 인물이 느끼는 갑갑함을 배가시켰다.

또한 알빙 부인을 가운데에 세우고 양옆에 2명의 배우를 배치한 구성도 눈에 띄었다. 양조아는 끊임없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다른 인물과 대화해야 했는데, 이는 불안한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또 다른 장치로 쓰였다.

극이 시종일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엥스트란드를 연기한 손상규는 딸 레지나를 상대로 바닥에 누워 고집을 피우는 등 어리숙한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양손프로젝트는 '유령들'을 시작으로 입센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3편을 매년 한 편씩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공연은 오는 26일까지 이어진다.

연극 '유령들' 포스터[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극 '유령들' 포스터
[LG아트센터 서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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