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1.4조원 재산분할’ 근거였던 ‘비자금’ 부정
①SK주식 공동재산인가 ②가사노동 기여도 쟁점
법조계 “재산 불법성 따지려면 실무 혼란” 우려도
①SK주식 공동재산인가 ②가사노동 기여도 쟁점
법조계 “재산 불법성 따지려면 실무 혼란” 우려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해 4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1.4조원 재산분할’을 명령한 원심을 파기하면서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두 사람의 법적 다툼이 새 국면을 맞았다. 노 관장은 과거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메모까지 공개하며 ‘노태우 비자금’ 입증에 나섰지만 대법원은 이 돈이 뇌물로 보인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노 관장이 자신의 기여를 얼마나 인정받느냐에 따라 재산분할액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과 노 관장 이혼소송 상고심 판결문을 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 16일 ‘노태우 비자금’ 부분을 문제 삼아 재산분할을 다시 하라고 판단했다.
앞서 2심 법원은 최 회장 재산을 약 4조원으로 추산하고 이 중 35%(총 1조3808억원)를 노 관장 몫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 재산의 절반이 넘는 SK그룹 주식을 ‘특유재산’(부부 한쪽이 결혼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으로 보고 재산분할액을 665억원으로 정한 1심과 20배 차이가 나는 결론이었다. 이혼 소송에서 특유재산은 배우자의 기여가 인정되지 않으면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노 관장 측이 항소심에서 1995년 검찰의 ‘노태우 비자금 수사’로도 밝히지 못했던 비자금의 존재를 스스로 공개하면서 법원 판단이 크게 달라졌다.
그런데 대법원이 ‘부친의 비자금을 통한 기여’를 부정하면서 파기환송심에서는 노 관장의 재산분할액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에 노 관장 측은 우선 최 회장 몫의 SK그룹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이라는 주장을 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1심과 2심 판단이 크게 갈렸던 부분인데, 대법원은 “SK주식을 비롯한 부부 공동재산”이라는 표현만 남기는 등 분명하게 판단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라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다시 따져볼 가능성이 남아 있다.
결국 향후 소송에서는 노 관장이 SK그룹의 성장에 유·무형적으로 기여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1심은 ‘노 관장이 직접 기여한 부분이 없다’며 주식을 재산분할에서 제외했지만, 2심은 ‘노 관장이 혼인기간 가사 및 양육을 담당하는 사이 이뤄진 최 회장의 경영활동이 SK그룹의 주가 상승에 기여했다’고 봤다. 파기환송심에서도 노 관장이 자녀 양육과 아트센터 나비에서의 대외활동 등을 통해 회사 경영에 기여한 점이 인정된다면 재산분할액은 1심(665억원)보다 커질 수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번 대법원 판결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법 비자금 같은 불법적인 자산 여부를 근거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면 가사 재판에 형사법 논리가 과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불법이라서 (그 돈을) 한쪽이 못 받는다고, 다른 쪽이 그 돈을 전부 가져가는 게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앞으로 하급심에서 재산 분할을 할 때마다 이 돈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지게 될 텐데, 실무상 그런 재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적었다. 가사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엄경천 변호사도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 앞으로 이혼 사건마다 ‘남편이 탈세로 돈 벌었다’는 등의 주장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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