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비즈 언론사 이미지

[줌인] 영국은 왜 中 연계 스파이를 기소하지 못했나

조선비즈 현정민 기자
원문보기

[줌인] 영국은 왜 中 연계 스파이를 기소하지 못했나

서울맑음 / -3.9 °
영국에서 중국과 연계된 간첩 행위를 벌인 혐의로 체포된 자국민 2명의 기소가 철회되면서 런던 정가에 파장이 일고 있다. 법적으로 중국이 ‘적국’으로 명시되지 않아 간첩법이 적용될 수 없다는 이유로 용의자들이 풀려나자 여·야는 사태의 원인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급급한 양상이다.

영국에서 중국과 연계된 간첩 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2023년 체포된 크리스토퍼 캐시(왼쪽)와 크리스토퍼 배리. /연합뉴스

영국에서 중국과 연계된 간첩 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2023년 체포된 크리스토퍼 캐시(왼쪽)와 크리스토퍼 배리. /연합뉴스



16일(현지 시각) 월스트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에서 중국 연계 간첩 행위를 벌인 용의자 2명이 기소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풀려나면서 정치권은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용의자는 영국 국적의 전직 의회 보좌관 크리스토퍼 캐시와 교사 크리스토퍼 배리로, 이들은 영국 의회의 내부 정보를 중국 정부에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사건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중국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크리스토퍼 배리는 항저우에서 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인 차이치를 최초로 접촉했다. 차이치는 국가 서열 5위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이후 배리는 암호명 ‘알렉스(Alex)’로 활동한 중국 정보기관 인물로부터 지시를 받아 캐시를 포섭한 후 영국 의회의 내부 기밀을 빼돌렸으며, 결국 이듬해 영국 검찰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캐시가 넘긴 정보 중에는 2022년 영국을 방문한 대만 국방부 대표단의 명단과 사진, 중국 기업의 반도체 공장 인수 심사 내역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재판은 예상치 못한 법적 허점에 가로막혔는데, 영국법상 간첩죄는 ‘적국(enemy)’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 이들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중국을 ‘국가안보 위협이자 적국’으로 규정하지 않은 상태로, 즉 피고인들은 ‘적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로 인해 7일 검찰은 기소를 철회했으며, 정치권은 즉각 책임 공방에 돌입했다. 보수당은 “노동당 정부가 중국과의 무역 관계 강화를 위해 재판을 의도적으로 포기했다”며 맹공을 퍼부었으며, 이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전임 보수당 정부가 중국을 안보 위협으로 명시하지 않았기에 재판이 무산됐다“며 역공에 나섰다. 매슈 콜린스 영국 국가안보부보좌관은 재판 취소 직후 ”중국은 영국 경제안보에 대한 최대의 국가 기반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에 대한 경계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은 최근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 정보기관 MI5의 켄 맥컬럼 국장은 “불과 지난 주에도 또 다른 중국 스파이 활동을 차단했다”며 “영국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국인에 부합하는 기회를 취하되, 위협에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기야 지난 13일 MI5는 의회 의원들에게 “중국, 러시아, 이란 스파이가 국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정치인들에 접근하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공개 경고를 발표했다. 영국 의회 정보보안위원회(ISC) 또한 “중국의 정보 수집 활동은 규모 면에서 영국이 경험한 적 없는 수준”이라며 “사이버 공격부터 학계·기업에 대한 정보 요구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사건 이후에도 경제 침체를 이유로 중국과의 무역 대화를 재개, 관계 유지에 힘쓰고 있다. 지난달 양국은 7년 만에 고위급 무역 협의를 개최했는데,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정부가 안보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면서 안이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외교적 부담과 정부의 관리 오류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첩보를 담당하는 정보기관 MI6의 나이절 잉크스터 전 작전국장은 “이 사건은 전형적인 행정적 혼선의 결말”이라며 “영국 정부의 뒤늦은 대처가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정민 기자(now@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