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MT문고]-'나는 이 빌어먹을 지구를 살려보기로 했다'
/사진 = 부·키제공 |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옳다.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올바른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주장이 도전받는 일이 잦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박이 대표적이다. 그는 "기후위기가 거대한 사기극"이라며 환경단체와 좌파 세력의 준동을 막기 위해 기후위기를 '의도적으로'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나 리치 옥스퍼드대학교 마틴스쿨 수석연구원은 저서 '나는 이 빌어먹을 지구를 살려보기로 했다'에서 수많은 숫자를 앞세워 이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매년 대기오염으로 9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사망하며 1970년 이후 야생동물 개체군의 규모가 69% 감소했다. 지구 생물의 75% 이상이 멸종하는 '대멸종'이 벌어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 위기는 음모론이 아닌 팩트다.
책은 깔끔한 분석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설명한다. 수많은 도표와 그래프, 퍼센트(%)로 그려진 진단서는 기후 위기론에 부정적인 사람도 납득하기 쉽다.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삼림 파괴 정도나 화석연료의 사용 비율,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국가는 어디인지 등 현안을 한눈에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대안이 들어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환경 문제를 다룬 책들이 대부분 현황 평가에서 그치고 있는 점과 다르게 저자는 적극적으로 위기 해결을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막연한 이야기보다는 '전기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멋지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나 '두부를 먹어서 열대우림을 보호하자'는 주장은 조야하지만 구체적이다.
여러 시도가 가득 담겨 있는 책이지만 단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기후 위기에 절박한 환경 운동가는 없다'는 말처럼 선진국의 제3자가 썼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비현실적인 대안으로 일관하는 대목이 그렇다.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고기를 끊고 비건이 되자는 주장이나 화석연료 소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철저히 선진국 본위적이다.
기후위기 음모론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는 치우친 사고방식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여론을 신경쓰는 대형 기업과 강대국에게는 엄격하지만 중국이나 인도 등 '독단적인' 국가는 흐린 눈으로 바라본다. 전세계를 아우르는 담론을 제시한다면서도 당장 내일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고려하지는 못했다.
저자는 통계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의 부편집장이자 영국왕립통계학회의 명예 회원이다. 데이터 전문가로서 구체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환경 문제를 알리는 일을 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나는 이 빌어먹을 지구를 살려보기로 했다. 부·키, 2만 4000원.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