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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혁신 가로막는 인구절벽 … 정년연장·해외인재 유치로 넘어야

매일경제 임성현 특파원(einbah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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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혁신 가로막는 인구절벽 … 정년연장·해외인재 유치로 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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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국경을 넘나드는 기술 교류를 확대하고 반독점 정책으로 기술 혁신의 걸림돌을 없애야 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혁신 성장의 대가들이 내놓은 한국 경제를 위한 고언이다. 또 이들은 급격한 인구 감소를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꼽고 관련 분야의 제도적 개선을 촉구했다.

13일(현지시간) 조엘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은 지금처럼 국경을 개방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경제 성장에서 모범 국가라는 설명이다.

특히 그는 "한국은 1950년대 매우 낮은 1인당 소득에서 기적적으로 세계에서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성장했다"며 "지리적으로 강한 나라와 인접해 어려운 환경이지만 민주주의 전환을 이뤄냈고 최고의 인물이 항상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나라"라고 말했다. 다만 모키어 교수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최대 리스크로 꼽았다. 그는 "한국에 대한 유일한 걱정은 출산율"이라고 단언했다. 단순히 인구 감소보다는 연령 구조 변화에 따른 경제활동인구의 감소에 주목했다. 그는 "세계 인구가 80억명에서 60억명으로 줄어도 큰 재앙이 오지는 않는다"며 "인구가 줄어드는 과도기에 연금 체계의 지속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프랑스처럼 정년 연장과 같은 제도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세계 어디에도 최적의 인구는 없으며 오히려 인구 분포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피터 하윗 미국 브라운대 명예교수 역시 저출산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혁신이 젊은 층에서 더 쉽게 이뤄지다 보니 고령화는 일반적으로 혁신에 유리하지 않다"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의 흐름이 인구통계 변수에 의해 끊기지 않도록 다른 곳에서 오는 아이디어에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장기적 기반이 인구라면 혁신 생태계는 당장 기술 성장의 명운을 쥐고 있다. 하윗 교수가 "한국 경제가 혁신을 이어나가려면 강력한 반독점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혁신의 걸림돌에 주목한 이유다. 그는 "미국은 최근 몇 년간 여러 부문에서 과도한 독점이 허용되면서 혁신과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이 있었다"며 "강력한 반독점 정책은 혁신 유인을 유지하는 데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하윗 교수는 조지프 슘페터가 제시한 '창조적 파괴'를 언급했다. 그는 "슘페터는 과거 독점적 지위와 높은 이윤이 혁신 유인이 된다고 봤지만 우리 연구에서는 오히려 경쟁이 치열할수록 기존 기업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이 혁신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할수록 기존 선도 기업은 혁신을 계속해 경쟁에서 앞서가려고 한다"며 "이미 성공을 이룬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두고서도 그는 "경쟁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자유무역 정책이 중요하다"며 "무역전쟁이 일어나고 관세가 높아져 무역이 제한될수록 시장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에 혁신할 인센티브가 줄어든다"고 비판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기술 성장에 주목한 배경에는 최근 전 세계, 전 분야를 휩쓸고 있는 인공지능(AI) 열풍도 있다. 다만 두 석학은 AI의 가능성과 위험성에 대해 입장차를 보이기도 했다.


모키어 교수는 "AI는 도구이고 현 단계에서 최고의 연구 조교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AI가 인간보다 더 똑똑하다는 생각 자체가 지능이 한 가지 척도로만 측정된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한다"며 "갈릴레오의 망원경, 레이우엔훅의 현미경처럼 AI도 새롭고 강력한 도구일 뿐이고 과학 혁명의 교훈은 도구가 좋아질 때마다 과학은 발전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그는 AI에 의한 일자리 잠식 우려도 일축한다. 모키어 교수는 "200년 전부터 기계로 인해 모두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지만 실제로 장기적 기술실업은 나타나지 않았다"며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가 더 많은 것을 맡게 되면 인간은 더 높은 수준의 새로운 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술 변화는 사람을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과업과 직업을 만들어낸다"며 "노동 시장의 최대 문제는 기술실업이 아니라 노동력 부족"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하윗 교수는 "AI가 일자리를 파괴하고 숙련노동을 대체할 잠재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재 1990년대 정보기술(IT) 붐과 유사한 성격의 AI 투자 붐의 한가운데에 있다"며 "수많은 기술 붐은 결국 붕괴로 끝났다"고 경고했다.

[뉴욕 임성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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