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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못 간 외환당국 개입…‘환율 1430원’ 버티기

이데일리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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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못 간 외환당국 개입…‘환율 1430원’ 버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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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원 마감…‘구두개입’에도 식지 않는 달러 수요
작년 개입 땐 50원 하락…이번엔 관세 복병에 약발 ‘글쎄’
“APEC 환율 분기점, 美증시 투자에 고환율 지속”
[이데일리 이정윤 기자] 원·달러 환율이 연일 고점을 높이며 1430원을 다시 넘어섰다. 외환당국이 1년 6개월 만에 구두개입 카드를 꺼냈지만, 효과는 하루도 이어지지 못했다. 한미 관세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장기화하고 있는데다 대미투자를 준비하는 기업과 해외 투자를 확대하는 개인 등을 중심으로 달러 수요도 확대하면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격화하고 유럽의 정치 불안이 더해지는 대외 상황도 환율에는 악재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구두개입 당시만 해도 환율이 50원 가까이 하락하는 등 시장이 반응했지만, 이번에는 당국의 개입이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면서 고환율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하리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 거래가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 거래가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5개월만에 환율 ‘최고’…당국 개입 효과 하루 만에 ‘끝’

14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환율은 전 거래일(1425.8원) 대비 5.2원 오른 1431.0원에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4월 29일(1437.3원) 이후 약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환율은 1426.5원으로 개장해 오전 중에는 1420원 후반대에서 움직였으나, 오후 들어 1430원으로 다시 올라섰다.

전날 환율이 1434.0원까지 치솟자 외환당국은 1년 6개월 만에 구두개입을 실시했다. 구두개입은 보유한 달러를 사고파는 실개입(직접개입)과 달리,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메시지를 통해 환율 급등락을 줄이는 정책수단이다.

당국이 사실상 1430원을 실개입 경계선으로 설정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구두개입 하루 만에 다시 환율은 1430원을 넘어섰다. 당국의 개입과 상관 없이 달러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24년 4월의 구두개입 당시 환율은 개입 시점 이후 19영업일 동안 약 50원이 하락했다. 그 당시 외환당국은 구두개입에 그치지 않고, 실제 달러 매도를 통한 개입도 병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국이 분기마다 공개하는 시장안정조치 내역에 따르면 외환당국은 2024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58억달러를 순매도했다. 또 당시 달러화 지수가 하락하면서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관세 불확실성, 원화 약세 부추겨…당국 개입도 상승세 억제 그쳐

시장에서는 한미 관세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당국의 구두개입 효과마저 사라지게 했다고 보고 있다. 대미 투자를 두고 한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교착상태가 이어지면서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이달 말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서 있을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 환율 하락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원화 가치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건 관세협상으로, APEC 전까지는 현 수준의 환율 흐름이 유지될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당국의 개입은 환율 하락보다는 상승세를 억제하는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시장 참가자들은 한국의 특이사항으로 한미 투자협상을 주시하고 있어 10월 말까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며 “협상이 타결이 된다 해도 대미투자금을 송금해야 하고, 타결이 되지 않아 보복관세가 부과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당분간 환율이 상승할 여지가 더 크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미 투자 등을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과 미국 증시 투자에 나서는 국내 투자자들의 달러 매수 러시가 고환율을 떠받치는 현상 역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만 서학개미는 약 1조 8000억원 규모의 미국 주식을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위재현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해외투자 환전 수요는 여전히 환율 하단을 지지한다”며 “최근의 환율 상승은 대미투자, 미중 갈등 등 정치적 리스크가 주도했으나, 한편으로는 미국 증시에 대한 낙관론에 따른 환전수요가 수급적으로 환율 하단을 지지하고 있어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