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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커상 최종후보 수전 최 "韓, 이해하고 싶은 미스터리"

연합뉴스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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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커상 최종후보 수전 최 "韓, 이해하고 싶은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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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방차관 "韓, 새로운 동맹 국방비 기준 충족의 최신 사례"
재일동포-미국인 가족 수십년 서사 '플래시라이트'
"내게 단 하나의 이야기는 '정체성'…친일행적 조부 이야기 언젠간 쓰고파"
"한국문화 현상 격세지감…아들 25% 한국계라 자랑스러워해"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 오른 '플래시라이트' 작가 수전 최[부커상 홈페이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 오른 '플래시라이트' 작가 수전 최
[부커상 홈페이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올해 영국 권위의 문학상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플래시라이트(Flashlight)'는 동아시아 격동기에 태평양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한국계 가족의 서사다.

'신뢰 수업'(2019)으로 미국 권위의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요주의인물'(2009)로 펜/포크너상 최종 후보, '미국 여자'(2003)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전 최(56)의 6번째 장편소설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화상 인터뷰로 만난 수전 최는 "부커상은 아주 권위 있는 상이라 특별한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플래시라이트'는 재일동포로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교수로 일하는 석, 그와 결혼한 미국인 아내 앤, 딸 루이자의 수십 년 세월을 그린다.

경계인으로서 정체성의 혼란, 가족의 부재에 따른 외로움, 상처부터 한반도의 복잡성과 비극에 휘말리는 인간의 처절한 모습까지 담겼다. 때로는 잔잔히 밀려오고 때로는 격랑이 몰아치듯 이야기는 깊은 슬픔과 날카로운 충격 사이를 오간다.

수전 최는 "어릴 적 한국의 친가 쪽과 단절됐기에 한국과 한국 역사는 내게 미스터리였고 그래서 더 동기부여가 되고 큰 관심이 있다"며 "지금도 알아가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조부와 아버지의 삶으로 인해 일제강점기와 한반도 역사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그의 조부는 1세대 영문학자·문학평론가이자 친일행적으로 비판받은 최재서(1907∼1964)다. 아버지 최창(1931∼2022)은 6·25전쟁 후 도미해 인디애나주립대 수학과 교수를 지냈고 유대계 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수전 최는 예일대와 코넬대 대학원을 나와 존스홉킨스대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친다.

2025년 부커상 최종 후보작 6편[Yuki Sugiura/부커상 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2025년 부커상 최종 후보작 6편
[Yuki Sugiura/부커상 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다음은 일문일답.

-- 주인공을 한국과 일본, 미국의 경계를 서성이다가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인물로 설정한 이유는.


▲ 이전부터 자이니치(재일동포)에 큰 관심이 있었다. 이 책이 내 가족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가족에 대해 더 알게 될수록 일제강점기가 엄청나게 트라우마를 남긴 일이었고, 한반도에서 내 가족이 겪은 어려움의 핵심 요인임을 이해하게 됐다. 자이니치를 통해 복잡한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건 내게 흥미롭고 이해를 넓혀주는 일이었다.

-- 각 인물에게 개별적 삶과 목소리를 준다.

▲ 캐릭터가 끌고 가는 이야기, 누군가의 삶이 시간이 흐르며 나아가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처음 시작했을 땐 얼마나 긴 세월을 다루게 될지 몰랐다. 난 책을 앞서 계획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책은 저절로 진화하곤 한다. 책이 질문을 만들어내고 이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책에 자전적 요소가 얼마나 있나.

▲ 유사점이 많다. 내가 루이자 나이일 때 아버지가 방문 교수가 돼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 지냈다. 그 경험이 나를 바꿔놨기에 작가가 되고서 그걸 쓰고 싶었다. 나는 부모님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루이자는 그보다 더 드라마 같은 환경에 놓이면서 가족 관계가 변형된다.

-- 가족사가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내 조부의 경력,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악명 때문에 일제강점기는 내게 더 관심이다. 오랫동안 이에 관해 쓰고 싶었지만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관심이 있었기에 연구를 더 많이 했고 이 책도 그 덕을 봤다. 조부는 복잡하고 문제적 인물이다. 나는 조부를 전혀 몰랐기에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지만, 아버지는 아닐 거다. 아버지는 미국인으로 사는 데 집중하셨다. 90대였던 말년에 날 다른 이와 혼동하곤 하셨다. 그럴 때면 당신에게 한국의 그림자가 어른대는 것 같았다. 50년 가까이 산 곳에서 돌아가셨는데도, 마치 집에서 먼 곳에서 돌아가신 것 같았다. 조부 문제가 아버지에게 미쳤을 영향은 내가 절대 알지 못할 무엇이다.

'플래시라이트' 영국판(왼쪽)과 미국판 표지

'플래시라이트' 영국판(왼쪽)과 미국판 표지


-- 이민진의 '파친코',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처럼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이 점점 주목받고 있다. 제니 한의 소설들은 젊은 층 인식을 자연스럽게 바꿨다. 다양성 측면에서 변화를 느끼나.

▲ 그렇다. 한인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해가면서 더는 소외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90년대엔 '아시아계 미국 문학'이 하나의 범주였고 아주 작은 수가 모두를 대표하는 듯한 황당한 상황이었다.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1995)이 크게 주목받았을 때 첫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한국계 미국 책이 하나 나왔으니 아무도 내 책은 안 읽겠네'라고 생각했다. 그 소수성이 마침내 뒤집힌 것 같다. 장성한 두 아들이 '25% 한국계라 자랑스럽다, 멋지니까'라고 한다. 둘째는 방학 때 서울에 가고 싶어 한다. 내 젊은 시절 문화의 샘이었던 유럽이 서울로 대체된 것 같다.

-- 한국문화가 글로벌 현상이 된 게 어떤 느낌인가.

▲ 어렸을 때 한국계란 사실이 부끄럽진 않았지만 한국과의 연결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교육받지 못할 것 같아 한국을 떠났다. 한국이 엄청난 문화적 물결이 되고 세계인이 빠져드는 긍정적인 존재가 돼 기쁘다.

-- '영화감독은 평생 영화 단 한 편을 만든다. 그걸 조각 내어 다시 만드는 것'(장 르누아르)이란 말이 있다. 작가로서 여러 작품을 통해 하려는 단 하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 각 책의 유사성이 잘 보이지 않아 그 이야기가 뭔지 알아차리긴 쉽지 않다. '플래시라이트'와 첫 소설 '외국인 학생'엔 공유된 DNA가 있다. 이 나라에 와서 삶을 꾸렸는데 부정당하는 것, 현재 겪는 것 같은 단절이다. '신뢰 수업'은 '누가 이야기할 힘을 가졌나. 누구의 목소리를 없앴나'를 묻는다. 결과적으로 내 모든 책을 통해 하는 이야기는 '정체성', '우리에게 정체성이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이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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