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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김정은의 화성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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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김정은의 화성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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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북한 김정은과 딸 주애가 지난해 10월 31일 화성-19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장면을 함께 지켜보고 있다. 당시 북한은 화성-19를 ICBM의 최종 완결판이라고 선전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북한 김정은과 딸 주애가 지난해 10월 31일 화성-19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장면을 함께 지켜보고 있다. 당시 북한은 화성-19를 ICBM의 최종 완결판이라고 선전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화성은 밤하늘에 붉게 보인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피와 불, 전쟁을 떠올렸다. 영어로 마스(Mars)는 ‘전쟁의 신(아레스)'에서 따왔다. 동양에서는 ‘불의 별(火星)'로 불렀다. 살벌한 어감과 달리 지금은 꿈의 행성으로 통한다. 생명체의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루 길이와 사계절 변화, 극지방의 얼음까지 지구와 닮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일론 머스크는 미래 인류의 생존을 위한 ‘화성 이주’ 프로젝트에 평생을 걸었다. 2050년까지 10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게 목표다. 돈벌이 수단을 넘어 화성은 원대한 비전과 집념, 희망을 상징하는 별이 됐다.

□ 한반도 상황은 전혀 다르다. 화성은 북한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집착일 뿐이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화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이 아닌 태평양 건너 워싱턴에 비수를 꽂겠다는 야욕이 담겼다. 2012년 4월 열병식에서 북한 최초의 ICBM인 화성-13을 선보이며 이목을 끌었다. 이후 화성 시리즈에 매긴 숫자가 커질 때마다 사거리를 늘리고 화력을 키웠다. 또한 추진체를 액체에서 고체로, 발사체는 고정식에서 이동식으로 바꾸며 한미 정보자산의 감시를 피해 은밀성과 신속성을 높였다.

□ 급기야 백두혈통 세습에 화성을 동원했다. 딸 주애가 모습을 처음 드러낸 건 2022년 11월 화성-17 발사장이었다. 핵과 더불어 북한의 무력을 상징하는 화성 ICBM과 김정은의 유력 후계자를 나란히 세웠다. 북한이 지난해 10월 ‘최종 완결판 ICBM’이라고 선전한 화성-19를 시험발사할 때도 주애는 옆에 있었다. 화성은 일약 독재체제의 호위무사로 자리매김했다. 김정은이 꿈꾸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없는지가 분명해졌다.

□ 북한이 다시 화성을 카드로 꺼냈다. 전승절 방중 전날 ‘차세대 ICBM’이라고 화성-20을 띄우더니 김정은이 평양에 돌아오자 엔진시험에 나섰다. 화성을 앞세운 북한의 폭주가 거침이 없다. ICBM의 타깃인 트럼프 정부도, 한반도 평화가 최우선인 이재명 정부도 골치 아픈 난제가 더 늘었다.

김광수 논설위원 rolling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