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거장 감독이자, 7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을 연출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다. 평범한 이들이 한때 자신들을 지옥으로 이끌었던 남자를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복수극으로, 10월 1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
한 다리가 의족인 ‘에그발’(에브라힘 아지지)은 임신한 아내, 어린 딸과 함께 운전 중 동물을 치게 된다. 근처 정비소에 들러 ‘바히드’(바히드 모바셰리)를 만나고, 독특한 그 의족 소리를 들은 바히드는 과거 임금 체불 문제로 수감된 자신을 고문했던 남자라 생각, 그를 납치한다. 에그발은 산 채로 땅에 파묻기 직전, 자신이 교도소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마음이 약해진 바히드는 그의 눈을 가린 채 당시 투옥되었던 수감자들에게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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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하고, 정치적이며, 개인적인 성취. 자파르 파나히의 최고작 중 하나.”(-로저 에버트)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이미 받았고, 이 영화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받은 이란의 영화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세웠지만, 정작 고향 이란에서는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이란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억압을 비판하며 반체제 영화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감금과 출국 금지를 당했던 감독의 12번째 영화로, 감옥에 갇혔던 감독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영화 제작 자체가 불법이었던 상황 속에서 비전문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와 실제 이란 현지 촬영이 주는 리얼리티가 주는 몰입감이 대단한 영화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아마추어 배우이자, 실제 파트타임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바히드 모바셰리는 ‘바하드’ 역을 통해 복수극을 넘어 서늘한 정치적 상황과 함께, 차마 강력하게 복수하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까지 특별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이란 정권에 의해 고문당한 여성 피해자이자 사진 작가로 등장한 ‘쉬바’(마리암 아프샤리)는 폭력에 반대했다가 에그발을 보자 흔들리는 인간성을 보여주며 특히 발군의 연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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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정부의 탄압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블랙 코미디로, 그 로드 무비에는 원한과 코미디가 곁들여 있다. 극중 배경이 많이 바뀌지 않는 데다, 대사 양도 많아 지루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작품 자체가 단단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고 뜻밖의 사건들로 인해 중간중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독특한 의족 소리를 듣고 돌아서지 못하는 바히드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서늘한 엔딩신과 함께 영화는 끝을 맺는다. 하나의 교통 사고에서 시작했지만 흐릿해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사적 복수와 정의의 경계, 즉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폭력을 통해 가해자에게 사적 제제를 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가 영화의 몸통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과연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에게 첫 번째 아카데미 후보 지명의 순간을 안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러닝타임 1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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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0호(25.10.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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