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정국 대혼돈에
일각에선 “마크롱 탄핵 추진”
일각에선 “마크롱 탄핵 추진”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격 사임하면서, 프랑스 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긴축 예산안 처리 실패와 의회 불신임으로 물러난 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의 후임으로 임명한 르코르뉘는 6일(현지 시각) 사직서를 제출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이를 수리했다. 2년 새 무려 다섯 번째 총리가 사임한 셈이다. 이들의 임기는 평균 6개월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프랑스의 독특한 권력 구조인 이원집정부제부터 알아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 등 국가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외치(外治)를 주도하고,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가 의회의 신임을 바탕으로 내각을 이끌며 예산과 같은 내치(內治)를 책임진다.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하는 것은 고유 권한이지만,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의회에서 불신임될 수 있기 때문에 하원의 다수당이 누구냐가 총리의 운명을 좌우한다. 문제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여권이 하원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여소야대’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마크롱이 내세우는 긴축 예산안이나 연금 개혁 같은 주요 법안은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통과가 어렵고, 총리는 계속해서 의회 불신임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바이루 총리와 그 전임인 바르니에 총리 역시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 예산안을 내놓았다가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불신임으로 물러났다.
프랑스 새 총리로 임명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장관. /AP 연합뉴스 |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프랑스의 독특한 권력 구조인 이원집정부제부터 알아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 등 국가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외치(外治)를 주도하고,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가 의회의 신임을 바탕으로 내각을 이끌며 예산과 같은 내치(內治)를 책임진다.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하는 것은 고유 권한이지만,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의회에서 불신임될 수 있기 때문에 하원의 다수당이 누구냐가 총리의 운명을 좌우한다. 문제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여권이 하원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여소야대’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마크롱이 내세우는 긴축 예산안이나 연금 개혁 같은 주요 법안은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통과가 어렵고, 총리는 계속해서 의회 불신임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바이루 총리와 그 전임인 바르니에 총리 역시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 예산안을 내놓았다가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불신임으로 물러났다.
6일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사임서를 제출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마크롱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발탁한 르코르뉘 신임 총리는 1986년생의 젊은 정치인으로, 보수당(공화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이 된 인물이다. 지방자치부, 해외영토부, 국방부 장관 등을 거치며 마크롱 정부에서 단 한 번도 경질되지 않았을 만큼 신뢰가 두터웠다. 특히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하고 사생활을 철저히 숨기는 성향 탓에 ‘수수께끼(l’enigme)’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며, 어려운 외교적 혼선을 수습하는 ‘막후 해결사’ 역할도 수행해왔다.
마크롱은 이런 르코르뉘의 강력한 추진력과 야당과의 협상 경험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산적한 국정 혼란 수습과 예산안 처리라는 난제를 맡기려 했다. 그러나 르코르뉘는 취임 후에도 언론 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필요할 때만 말한다’는 태도를 고수했고, 긴축에 반대하는 극좌와 극우 양쪽 진영의 거센 비판과 시위 예고 속에 결국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물러났다.
그의 사임은 내각 구성을 발표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뤄졌는데, 사임의 직접적인 원인은 발표된 내각이 기존 바이루 내각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판박이 내각’이라는 비판이 좌우 양쪽에서 터져 나오면서 정국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25년 9월 23일 뉴욕시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UNGA)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
프랑스의 정치 위기는 만성적인 재정 위기에서 비롯됐다. 프랑스는 GDP 대비 국가 부채가 113.9%로 유로존에서 셋째로 높고, 정부 지출이 GDP의 57.2%에 달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높은 수준의 복지(연금, 건강보험, 실업수당 등)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복지 지출은 줄이기 힘들고, 세수 구조는 악화하면서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신용 등급까지 강등됐다.
유럽연합(EU)이 프랑스에 재정 적자를 GDP의 3%로 줄이라고 권고하면서 총리들이 긴축 예산안을 내놓았으나, 좌우 양극단이 ‘긴축 반대’를 정치적 무기로 삼으면서 총리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프랑스 정치권 일각에서는 사실상의 국가 부도인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르코르뉘가 물러나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이제 또다시 새 총리를 지명해야 하는 막다른 길에 몰렸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마크롱은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야당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을 지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특히 극좌 성향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를 비롯한 야권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의 퇴진이나 의회 해산 대신 계속해서 측근 인사를 고집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무시이자 도발’이라고 맹비난하며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프랑스 1당이자 극좌 정당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 / EPA 연합뉴스 |
일각에서는 야권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극좌파가 요구하는 인물을 총리로 지명할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이는 마크롱의 국정 철학과 배치되는 일이어서 가능성은 낮다. 마크롱이 또 르코르뉘같은 최측근을 지명할 시 프랑스는 더욱 심각한 정치적 마비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현재로선 마크롱 1기(2017년~2022년)에서 초대 총리를 지낸 에두아르 필리프 르아브르 시장을 재기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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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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