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내 강경 우파...아베 전 총리 내각때 중용되면서 두각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상. /AFP 연합뉴스 |
4일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상은 큰 이변이 없는 경우 오는 15일 일본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에 오른다. 평소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동경한 다카이치는 작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이시바 시게루 현 총리에게 밀려 낙선했으나, 올해는 유력 후보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상을 제치고 총재 자리를 차지했다.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을 종합한 다카이치의 정치인 인생은 ‘혼자서 묵묵히 걸어간, 강경 보수의 길’이다. 다카이치는 1961년생으로 나라현 출신이다. 회사원 아버지와 경찰관 어머니를 뒀다. 당시 ‘맞벌이’ 부부가 많지 않던 시절이다.
어머니는 어린 다카이치에게 “빨간 장미처럼 되라”고 했다. 여성다운 화려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잘못된 것엔 맞서는 ‘가시’가 되라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가와사키의 ‘Z400GP’ 오토바이를 즐겨 타고, 대학에서는 헤비메탈 밴드에 속해 드럼 연주도 했다. 초등학교때 피아노를 가르쳐준 음대생의 영향으로 하드록을 좋아했다고 한다. 혼자서 일본 일주를 하기도 했다.
4일 일본 자민당 총재에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젊은 시절 자신의 오토바이에 앉아 찍은 사진. /다카이치 사나에 홈페이지 |
고베 대학 졸업 한뒤, 마쓰시타정경숙에 입숙했다.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설립한 마쓰시타정경숙은 일본 정치인의 요람과 같은 곳이다. 다카이치는당시엔 정치인보다는 경영을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5기생이다.
정치인을 지망한건, 24살때다. 미국에서 하원 의원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일본으로 귀국한 뒤에는 텔레비전 방송 캐스터로도 활동했다. 밴드 엑스재팬(XJAPAN)과 일본 프로야구팀 한신 타이거스의 팬이다.
인지도가 높은 방송인이었지만, 입문 때는 쓴맛을 봤다. 1992년 자민당내 경선에서 패배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것이다. 1993년 중의원 선거때 무소속으로 다시 도전해, 당선했다. 당시 당선 동기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다.
자유당, 신진당 등을 거쳐, 1996년에 자민당에 들어왔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4년 8월 15일 동료의원들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 하는 다카이치 사나에./AP 연합뉴스 |
아베 신조는 2006년 총리(아베 1차 내각)가 됐고, 다카이치는 오키나와·북방담당상으로 첫 입각했다. 이후 아베 정권(2차 내각)때 핵심 각료인 총무상과 자민당의 ‘당 3역’ 중 하나인 정조회장을 지냈다. 매년 두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탓에 다카이치가 유력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한일 관계에 대한 전망에도 불안한 기류가 흐르곤 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 도전은 이번이 세번째다.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첫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하지만 당시 아베 전 총리가 지원하면서 결선 투표에 오르면서, ‘총리감’으로 각인됐다.
작년에는 당내 보수파의 지지를 받아 결선 투표에 진출했으나 온건파인 이시바 총리에게 밀려 낙선했다. 하지만 1차 선거에선 이시바를 이기면서, ‘언젠가 총리를 할 인물’이란 이미지는 얻었다.
일본 자민당 신임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가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그래픽=조선디자인랩 |
정치인이지만, 인맥을 만드는데 서툴다. 산케이신문은 “다카이치는 작년 총재 선거 패배한뒤, 지난 1년간 술자리에도 참석하며,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자평했다”고 했다.
이번 결선 투표에 앞선 최후 연설에서 다카이치는 “일본의 지금과 미래를 위해 자민당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위기감 때문”에 총재 선거에 출마했다고 밝혔다. 또 고물가 문제를 최우선으로 잡고, 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인태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 만들고, 다음 세대로 이어 가자”고 강조했다.
당선 연설에서 다카이치는 ”기쁘다는 것보다 정말 앞으로가 힘든 일“이라고 소감을 남겼다. 그러면서 ”전세대가 총력을 모아, 전원이 참가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당을) 바로 세울 수 없다”면서 “나 자신도 ‘워크 라이프 밸런스’라는 말을 버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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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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