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배우자 반대에도 장남에 재산 몰아준 노인… 대법 “이혼 사유”

조선일보 방극렬 기자
원문보기

배우자 반대에도 장남에 재산 몰아준 노인… 대법 “이혼 사유”

속보
검찰,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 53명 구속 기소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60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하면서 함께 이룬 재산을 배우자의 반대에도 일방적으로 장남에게 몰아주는 것은 이혼 사유가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80대 A씨가 배우자인 90대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서 ‘이혼 사유가 안 된다’고 본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에 돌려보냈다.

A씨와 B씨는 1961년 결혼해 3남 3녀를 뒀다. 함께 농사를 지어 벌어들인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A씨는 식당 등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다만 부부가 혼인 기간 매입한 주택과 농지 등은 대부분 B씨의 단독 명의로 돼 있었다.

두 사람이 재산 문제로 갈등하기 시작한 건 2022년 살던 주택이 산업단지 조성 사업에 편입·수용되면서부터였다. B씨는 A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약 3억원의 보상금을 장남에게 증여했고, A씨는 집을 나와 별거를 시작했다. 이후 B씨는 배우자와 상의 없이 가지고 있던 15억원 상당의 농지도 장남에게 물려줬다.

이에 A씨는 “B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부부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면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B씨의 일방적인 재산 처분 과정이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B씨는 “해당 부동산은 결혼 전부터 갖고 있었거나 혼인 중 상속·증여받은 ‘특유 재산’”이라며 “이를 장남에게 물려준 것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1·2심은 “부부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혼인 생활을 강제하는 것이 A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A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산을 장남에게 증여한 것만으로는 결혼이 파탄된 책임이 B씨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 손을 들어주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B씨가 일방적으로 장남에게 증여한 재산은 부부 생활의 기초를 이루는 자택이나 농경지 거의 전부에 해당하고, 그 가치는 총 18억원 이상”이라며 “이는 혼인 중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의 주요 부분을 정당한 이유 없이 배우자의 협의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분해 부부 생활의 경제적 기반을 형해화하거나 위태롭게 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노령이 된 B씨는 A씨와 함께 평생 이룬 재산을 일방적으로 처분하고, A씨에게 남은 생애의 도모를 위한 합당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A씨의 경제적 자립과 안정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심각하게 해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갈등 내용과 정도, 별거 경위와 기간 등을 고려하면 이들 혼인 관계는 부부 상호 간 애정과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혼인 생활을 강제하는 것이 A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방극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