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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달걀·뉴턴의 사과 같은 ‘변기’…마르셀 뒤샹의 ‘샘’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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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달걀·뉴턴의 사과 같은 ‘변기’…마르셀 뒤샹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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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68년 10월 2일 81세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1887~1968) 한국 전시는 1987년 처음 열렸다. 뒤샹 탄생 100년이 되는 해였다. 서울 구기동 서울미술관은 1987년 9월 1일부터 한 달간 뒤샹 작품 110여 점을 전시했다. 조선일보 1987년 7월 30일자는 7면에 톱에 ‘마르셀 뒤샹 첫 국내전/ ‘현대미술의 아버지…탄생 1백주년 맞아’ 제목으로 전시 소식을 전했다.

마르셀 뒤샹 첫 국내전. 1987년 7월 30일자.

마르셀 뒤샹 첫 국내전. 1987년 7월 30일자.


“현대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뒤샹 하면 기성품 ‘변기’를 연상한다. 1917년 ‘샘’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출품한 ‘변기’는 오늘날의 예술이 단순히 전통적인 미적 감상의 틀에만 안주할 수 없다는 점을 경고, 20세기 화단에 충격을 던졌다.”(1987년 7월 30일 자 7면)

뒤샹은 1917년 남자용 소변기를 뒤집어 놓고 아래에 리처드 머트라는 사람의 서명과 제작 연도 ‘R. MUTT. 1917’이라고 적었다. 작품 이름을 ‘샘(Fountain)’이라고 했다.

마르셀 뒤샹 '샘'.

마르셀 뒤샹 '샘'.


뒤샹은 이 작품을 1917년 4월 20일 뉴욕 그랜드 센트럴 갤러리에서 열린 ‘앙데팡당 전’에 출품했다. 뒤샹 자신이 운영위원이었던 이 전시는 젊고 패기 넘치는 작가들을 포용하는 전시회를 표방했다. 참가비 6달러를 내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도록 했다. 뒤샹을 제외한 운영위원들은 남자용 소변기 출품에 난감해했다. 이게 작품이라고? 결국 ‘샘’은 전시 공간을 차지하지 못하고 전시장 칸막이 뒤에 방치됐다.

뒤샹은 전시가 끝난 후 잡지 ‘눈먼 사람(the blind man)’을 통해 전격 비판에 나섰다.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6달러라는 참가비를 낸 모든 화가는 작품을 전시할 권리를 갖는다. 리처드 머트씨의 작품 ‘샘’을 거부한 것은 어떤 근거에 따른 것인가. 혹자는 그것이 부도덕하고 상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머트씨의 샘은 부도덕하지 않다. 머트씨가 그것을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배치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1999년 2월 22일자.

1999년 2월 22일자.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는 뒤샹의 ‘샘’을 콜럼버스의 달걀, 뉴턴의 사과에 비견했다. ‘아듀 20세기’ 시리즈 기사 중 하나였다.

“화장실 변기를 미술관의 예술품으로 전시한다면, 그리고 거기에 ‘샘물’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변기 제조 회사 상표는 예술가의 사인과 맞먹고 배설물은 청정한 물과 만나게 된다. 아래로 흐르는 것은 위로 솟는 것과 관계를 맺는다. 예술이란 실체가 아니라 이 엉뚱하고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차이와 변화이다. 이 평범한 변기 하나에서 다다, 슈르레알리즘, 오브제 아트, 팝 아트 등 수많은 20세기의 전위 예술 운동이 탄생한다. 콜럼버스의 달걀, 뉴턴의 사과가 20세기의 변기가 된다.”(1999년 2월 22일 자 19면)

3형제 예술가의 막내 마르셀 뒤샹. 1970년 3월 12일자.

3형제 예술가의 막내 마르셀 뒤샹. 1970년 3월 12일자.


마르셀 뒤샹이 신문 지면에 처음 본격 소개된 때는 1970년 3월 12일 기사로 보인다. 당시 조선일보 주최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프랑스 현대 명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뒤샹의 작품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사는 마르셀 뒤샹을 소개하는 이유를 다음처럼 서술했다.


“현재 조선일보사 주최로 경복궁 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현대 명화전에 자크 비용이란 사람의 판화 ‘경기자(競技者)’를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최고의 명예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고 베니스 비엔날레전 회화 부문 국제상 등 수많은 대상을 자기 것으로 한 자크 비용이 프랑스 현대 화단의 명문(名門) 뒤샹가(家) 3형제 가운데 맏이란 사실은 아는 사람만 안다. 비용의 본명은 가스통 뒤샹이고 그의 동생은 유명한 조각가 레이몽 뒤샹, 제일 아래가 2년 전에 죽은 세계적 추상화가 마르셀 뒤샹이다.”(1970년 3월 12일자 5면)

2018년 12월 21일자. 마르셀 뒤샹 50주기전.

2018년 12월 21일자. 마르셀 뒤샹 50주기전.


뒤샹 작품은 별세 50주기인 2018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세계 최다 뒤샹 컬렉션을 소유한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손잡고 회화·조각·입체·아카이브 등 153점을 선보이는 아시아 지역 최대 순회전이다. 2018년 12월 22일부터 이듬해 4월 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다.

입체파 화가로서 이름을 날리게 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2’(1913) 같은 회화부터 ‘샘’처럼 기성품에 예술적 맥락과 개념을 주입했던 ‘레디메이드(ready-made)’ 시리즈, 여성으로서의 자아(에로즈 셀라비)를 창조해 성 관념을 부쉈던 당시 촬영 사진 및 저작까지 망라했다(2018년 12월 21일 자).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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