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면담하기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
한·미 재무당국이 1일 “부당한 경쟁 우위를 목적으로 한 환율 조작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원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걸 막겠다는 미국 의지가 담긴 합의다. 정부는 현재 환율정책의 기본 원칙을 확인하는 수준이라는 입장이지만 향후 한국의 대규모 대미 투자로 환율 변동성이 커질 때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는 이날 합의문에서 “효과적인 국제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는 주요 20개국(G20)이 오랫동안 견지해온 ‘환율은 시장에 맡긴다’는 원칙과 유사하다.
이번 합의는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한 한·미 ‘2+2(재무·통상 수장) 통상협의’의 후속조치다. 당시 미국의 요청으로 관세 협상과 별도로 환율이 협상 의제에 포함됐다.
합의문에는 “거시건전성이나 자본이동 관련 조치는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담겼다. 이는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이나 자본 유출입 관리 목적의 환율정책은 펼 수 있지만, 원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환율 정책을 쓸 수 없다는 의미다.
국민연금 등 정부 투자기관을 환율 조작에 동원하면 안 된다는 대목도 있다. “정부 투자기관의 해외투자는 위험의 조정과 투자의 다변화 목적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6월 발표한 환율 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를 원화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꼽았다. 외환당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과 650억달러 규모의 외환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는데 이를 인위적 개입으로 본 것이다.
한·미 양국은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이나 무질서한 움직임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고려돼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아울러 개입은 환율의 방향과 관계없이 대칭적이어야 한다. 통화가치 절하·절상 중 어느 한 경우에만 개입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다만 ‘과도한 변동성’의 기준이 모호해 미국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현재 분기별로 공개하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대외 비공개를 전제로 미국 재무부에 월 단위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관세 협상 이후 진행될 수 있는 ‘환율 전쟁’에서 미국이 사용할 견제구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과 일본 등 무역 상대국이 관세로 인한 수출 피해를 환율 조정으로 상쇄하지 못하도록 미리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대규모 대미 투자는 원하면서도 그로 인한 달러 강세는 원치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순된 입장을 반영한 조치이기도 하다. 향후 한국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부담을 지게 될 경우 투자 손실 위험에 노출될 뿐 아니라 ‘환율 방어’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이번 합의로 환율조작국 지정 리스크를 낮췄다고 평가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합의문에 따르면 한국이 환율조작국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3500억달러 대미 투자의 선결 조건으로 내건 무제한 통화 스와프가 받아들여지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합의문에 ‘안정성’(stability)이라는 표현을 추가로 넣었다. 정부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하면서도 외환시장이 안정되려면 미국의 통화 스와프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 대한 관찰대상국 지정이 해제되기를 바랐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이번 합의는 한·미 간 통상 갈등을 완화하면서 통화 스와프 계약 체결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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