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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그림만 1500점 그린 에드가르 드가…파리엔 ‘드가 거리’도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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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그림만 1500점 그린 에드가르 드가…파리엔 ‘드가 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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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17년 9월 27일 83세
에드가르 드가 자화상. 1855년.

에드가르 드가 자화상. 1855년.


19세기 프랑스 화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발레 무용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가 그린 ‘발레 작품’은 유화·스케치를 포함해 1500여 점에 이른다.

1879년 작 ‘에투알’은 발레 의상을 갖춰 입은 무용수가 두 팔을 펼치고 한 발로 회전하는 동작을 잡아냈다.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별’이란 뜻.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를 일컫는다.

에드가르 드가 '에투알' 1879년작.

에드가르 드가 '에투알' 1879년작.


화면에서 ‘에투알’이 춤추는 무대 왼쪽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서있다. 얼굴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무대 뒤까지 들어갈 특권이 있는 상류층 귀족이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는 “그는 일반 관람자가 아니라 예술을 후원하는 상류층 클럽의 회원으로 추정된다. 드가는 이런 회원 중 한 사람을 친한 친구로 둔 덕분에 극장의 특석을 비롯해 무대 뒤나 분장실 근처까지 드나들며 스케치를 할 수 있었다”(2021년 6월 21일 자)고 했다.

에드가르 드가, 1875년 작 ‘페로의 교습시간’.

에드가르 드가, 1875년 작 ‘페로의 교습시간’.


1875년 작 ‘페로의 교습 시간’ 역시 연습실까지 들어가 관찰하고 그린 작품이다. 화면 오른쪽 남자는 당대 유명 안무가 쥘 페로.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나이 든 안무가가 무용수에게 어떤 동작을 주문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화면 왼쪽 위 무용수는 순서를 기다리다 가려워진 등을 긁고 있다.

드가는 36세에 오른쪽 시력을 잃었다. 이후 왼쪽 눈 시력도 점차 잃어 갔다. 초기 작품에서는 미세한 그림자, 섬세한 얼굴 표정, 근육 움직임 등이 표현되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시력 저하로 거친 검은색 윤곽과 다소 굵은 그림자 라인들이 화폭을 차지했다.

시력을 잃은 에드가르 드가, 섬세한 붓터치를 잃었다. 2022년 11월 24일자.

시력을 잃은 에드가르 드가, 섬세한 붓터치를 잃었다. 2022년 11월 24일자.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는 조희윤 한양대구리병원 안과 교수 말을 인용해 “드가는 유전성 망막 질환이나 망막 중심부 황반 질환을 앓았을 것으로 보인다. 중심 시력의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에 보고자 하는 중심부의 형태가 왜곡되거나 흐려지게 된다”(2022년 11월 24일 자)고 했다.


드가 그림은 1976년 3월 한국을 찾았다. 조선일보 주최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프랑스 인상파 특별전’에 고갱, 세잔, 르누아르, 마네, 모네 등의 작품과 함께 서울을 찾았다. 전시회를 계기로 서울에 작품이 오는 인상주의 화가를 소개하는 기사가 연재됐다. 드가는 6회째로 신용석 파리 특파원이 썼다.

한국에 온 에드가르 드가 작품. 세느강변엔 '드가 거리'도 있다. 1976년 3월 16일자.

한국에 온 에드가르 드가 작품. 세느강변엔 '드가 거리'도 있다. 1976년 3월 16일자.


“드가가 살던 집으로 통하는 길이 화가가 세상을 떠난 직후 드가가(街)로 명명되어 지나가는 파리장들은 파리의 화가였던 드가를 회상하게 한다. (중략) 오늘도 수많은 파리 시민들은 비록 드가만을 위한 기념관이 없지만 드가가라고 군데군데 붙여진 유서 있는 길을 지나면서 평생을 파리에 살면서 파리와 파리장들을 그리다간 화가 에드가 드가를 연상하고 있는 것이다.”(1976년 3월 16일 자)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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