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규정을 어긴 군기훈련(얼차려)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중대장이 지난해 6월 21일 강원도 춘천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뉴스1 |
규정을 위반한 군기 훈련(일명 얼차려)을 지시해 훈련병을 숨지게 한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 중대장에게 징역 5년 6개월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25일 학대치사, 직권남용 가혹행위 혐의로 기소된 중대장 강모(28·대위)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부중대장 남모(26·중위)씨도 징역 3년을 확정받았다. 남씨는 1,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강씨 등은 지난해 5월 23일 강원도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6명을 대상으로 규정을 위반한 군기 훈련을 진행하며, 쓰러진 박모(21) 훈련병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경위와 경과 등을 수사한 결과 학대 행위로 볼 수 있는 위법한 군기 훈련으로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판단,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아닌 학대치사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지난해 6월 19일 서울 용산역광장에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 숨진 훈련병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12사단 훈련병 시민 추모 분향소에서 휴가 나온 한 군 장병이 헌화하고 있다. 뉴스1 |
1심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죄에 해당하는 ‘상상적 경합’으로 판단해 학대치사죄(징역 3~5년)를 토대로 형량을 정했다. 하지만 지난 6월 18일 열린 2심 재판부는 하나의 행위가 여러 범죄를 구성하는 ‘실체적 경합’으로 판단하고 강씨의 형량을 징역 5년에서 6개월 늘렸다. 상상적 경합은 가장 무거운 죄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하고, 실체적 경합은 가장 무거운 죄 형량의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회에 이뤄진 행위라고 판단했지만, 피해자별로 구체적인 가혹 행위와 학대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1개의 행위가 아니라 여러 개의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징병제 하에서 병사들은 일정 기간 여러 기본권을 제한받으면서 조국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청춘을 바친다”며 “상명하복의 군 조직을 유지하고, 특수 임무를 위해 기본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병사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엄격하게 관계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신체의 본질을 침해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그런데도 피고인들은 군기 훈련 규정을 중대하게 위반했고, 일부 피해자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다가 쓰러지고, 뒤처지는 상황에서도 적절한 휴식을 부여하거나 훈련을 중지시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군 지휘관인 피고인들이 오히려 후진적 형태의 병영문화를 답습함으로써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망사고를 초래했다”며 “피고인들은 국가가 병사들의 생명과 신체를 지켜줄 거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 기제를 정면으로 배반했을 뿐만 아니라 군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민 신뢰까지 저해했다는 점에서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육군 12사단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규정을 위반한 군기훈련(얼차려)을 실시한 혐의를 받는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해 6월 21일 춘천지법 앞에서 군인 자녀를 둔 부모가 피의자들의 구속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당시 2심 판결 선고가 끝난 뒤 훈련병 박씨의 어머니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로서 입대한 지 열흘 만에 썩고 병든 군 지휘체계로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며 “아들의 죽음을 통해 군대의 법과 질서가 바로 세워졌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강씨 등은 2심에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