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페이스북 갈무리 |
허지희 | 세종호텔 해고자
계절의 변화가 반갑지 않다. 동료인 고진수 해고자가 20m 높이 지하차도 차단기 철제 구조물에 있기 때문이다. 나도 같은 해고자다. 세종호텔은 코로나19가 잦아들던 2021년 12월 민주노총 조합원만 해고했다. 단순한 ‘코로나 해고’가 아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멈췄고 감염 대상은 공평했으나 피해는 평등하지 않았다. 해고된 이들에겐 정부의 외면 속에 다시 일어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세종호텔(세종투자개발)은 세종대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100% 지분을 가진 수익자산 업체다. 자회사에 당장에라도 배당 가능한 30억원을 요구하지 않았고, 2021년 회사 대표는 신청만 하면 지급되던 특별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노사가 상생하는 대신, 육아휴직자까지 정리해고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유로 호텔 안에 있는 모든 식당을 문닫아 4성급 호텔 등급 심사기준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흔한 해고처럼 보이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람 손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다. 정규직을 희망퇴직시킨 대신 용역회사를 썼다. 비정규직 외주화를 위해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만 정리해고한 것이다. 280명이 관리하던 333개 객실을 정규직 21명이 운영한다. 호텔 커피숍과 뷔페는 외부 식당과 병원에 임대했다. 호텔 등급도 3성급으로 떨어졌다.
정리해고 1년 후, 세종호텔은 코로나19 이전 수익을 복구했다. 케이팝 등으로 많은 관광객이 서울에 몰려 호텔 업계는 다시 호황이다. 해고 근거였던 적자가 흑자로 바뀌었음에도 회사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결국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고진수 해고자가 하늘에 자신을 가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연회장을 다시 열자고 말한다.
해고자 12명 중 6명만 남았기에 이들의 복직은 지금 재정구조와 인력구조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서비스의 질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부당해고 소송에서 이겼다고 ‘해고자 우선 복직’이라는 근로기준법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쪽은 복직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지난 2월 윤석열 퇴진을 외치던 광장의 시민들이 세종호텔 고공농성자를 만나러 서울 명동으로 왔다. 10만이 넘는 사람들의 응원 사진은 고진수의 페이스북 고정 게시물이다. 그는 믿는다. 광장의 힘과 복직을. 광장의 요구엔 윤석열 퇴진만이 아니라 평등으로 가는 사회 대개혁도 있으니까.
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페이스북 갈무리 |
이재명 정부가 취임하고 노동부 장관이 고공에 있는 고진수 해고자를 만났다. 지난달 20일 대양학원 이사회가 세종호텔 해고 문제 해결방안을 마련하라고 오세인 세종호텔 대표에게 지시하면서 그 결정에 이사회는 따르겠다고 했다. 그 후 오세인 대표와 노조의 교섭이 잡혔고, 3년9개월 만인 지난 12일 노사 간 첫 교섭이 열렸다. 그러나 사쪽은 대화일 뿐이라며 제대로 된 안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 해고자뿐 아니라 연대하는 시민들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곧 추석이다.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풍성한 명절에 동료 고진수가 철제 구조물에 계속 있을까 겁이 난다. 그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구조물에서 핫팩으로 겨울을 버티고, 그 뜨거운 폭염을 얼음 생수 하나로 견뎌냈다. 외로움과 고립감, 건강 악화가 눈에 보일 정도다. 진정성 있게 안을 준비해야 추석 전에 고공농성자가 가족들과 명절을 보낼 수 있다. 대양학원과 세종호텔은 이제라도 거리에서 보낸 해고자들의 4년에 대해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해외 관광객이 주요 고객이라도 호텔은 서비스업인 만큼 시민들의 신뢰가 중요하다. 더구나 대양학원은 교육기관이다. 공공성을 가진 사학재단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해고자 복직을 위해 진정성 있는 안을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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