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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칼럼] 2시간45분 美中 전화통화

매일경제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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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칼럼] 2시간45분 美中 전화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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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 주필

손현덕 주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단 4개의 문장으로 정리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 통화 후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은 영어 단어로 114자. 중국 측도 4개의 문단으로 요약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이 9·19 남북군사합의를 복원하자며 민통선 내 옛 미군기지에서 평양 어복쟁반과 해주 비빔밥으로 오찬을 하면서 의기투합하던 그날, 미·중 정상은 태평양을 사이에 놓고 목이 쉴 정도로 오랜 시간 전화 통화를 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8시에 시작해서 10시 45분에 끝났다. 총 165분.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트럼프와 통화한 시간은 20분이고 지난달 얼굴을 마주 보고 한 회담 시간도 이보다 짧은 140분이었다. 가위 기록적인 통화 시간.

무슨 얘길 그렇게 오래 나눴으며, 왜 그렇게 간단한 자료밖에 내놓지 않았을까? 숨기는 것이라도 있는가? 미국 측 발표엔 있는데 중국 측 발표엔 없는 것, 또 그 반대로 중국엔 있는데 미국엔 없는 것.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솔직하게 의견 교환을 했다는 건 이견이 있었다는 외교적 수사일 터, 그 이견은 무엇이었는지. 모든 게 아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금까지 미·중 갈등의 불씨로 작용한 건 크게 세 가지. 관세, 기술, 대만이다. 3시간 가까이 통화하고 이들 핵심 의제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이슈에 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한 정도. 기술과 대만 문제는 아예 없다.

분명한 건 이날은 분명 변곡점이었다는 점. 긴장과 충돌로 치달을 것 같은 미·중 관계가 접점을 찾는 탐색전에 돌입한 날. 무슨 근거로? 시진핑은 그 엄혹한 일본 제국주의 시절 미국이 중국의 항전에 도움을 준 점에 감사를 표했다. 마치 우리가 한미동맹을 언급하면서 6·25전쟁 때 미국 청년들이 흘린 피에 감사를 표한 것처럼. 시진핑 입에서 그런 비위 맞추는 발언이 나올 줄은 몰랐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듯이 지금은 미국과 일본이 친구지만 그때는 미·중이 친구였고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른다는 걸 암시하고 싶었을까? 오랫동안 미국의 눈엣가시였던 틱톡에 대해 일방적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의미 있는 입장 변화를 보였다. 트럼프도 호응했다. 미·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이며, 중국 측과 장기적이고 위대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고. 쉽게 할 말은 아니었다. 내년 초 트럼프가 중국을 방문하고 적절한 시기에 시진핑이 미국에 올 것이라며 지속적인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건 실질적 진전이다. 전화 통화가 있기 하루 전 대만에 대한 4억달러 규모의 무기 지원 승인을 거부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확실한 행동을 보여줬다.

두 나라 간 핵심 이슈는 모두 한국 경제와 안보에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다. 관세는 국가 간에 서로 맞물려 매겨지는 데다 중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중간재에 영향을 준다. 기술 문제는 중국의 제조업 굴기에 맥 못 추는 우리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며, 대만은 한국의 안보에 아킬레스건이다. 결코 중립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단순히 미·중에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까지 얽혀 있다.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충돌 국면을 피한 것 같지만 그게 안전 운행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트럼프라면 그 폭은 180도 유턴까지 가능하다. 우리가 미·중 관계에 안테나를 높이 세워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가교론'은 단지 만남의 장소만 제공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의도를 읽고 분석해 현명하게 대처해야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괜한 걱정일진 몰라도 주변 강대국이 우리의 운명을 마음대로 재단한 구한말 조선꼴 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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