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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기생충’ 작곡가가 클래식으로 그려낸 ‘인페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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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기생충’ 작곡가가 클래식으로 그려낸 ‘인페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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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왼쪽)이 23일 서울 종로구 더프리마아트센터에서 ‘오징어 게임’ 음악을 만든 작곡가 정재일과 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왼쪽)이 23일 서울 종로구 더프리마아트센터에서 ‘오징어 게임’ 음악을 만든 작곡가 정재일과 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영화 ‘기생충’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 정재일(43)이 정통 클래식 음악으로 그려낸 지옥은 어떤 모습일까. 정재일이 서울시향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정통 클래식 작품을 오는 25·2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초연한다. 뉴욕필을 이끌던 지휘자 얍 판 츠베덴(65)이 서울시향을 책임지면서 2023년 정재일에게 위촉한 곡이다. 다음 달 27일엔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연주한다.



23일 서울 종로구 프리마 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재일은 “악보를 처음 드렸을 때 채점을 앞둔 초등학생 심정이었다”며 웃었다. 그가 4개 악장에 15분 분량으로 내놓은 관현악 작품은 지옥이란 뜻을 지닌 ‘인페르노’.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13세기 베네치아 출신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몽골 제국 황제 쿠빌라이 칸의 대화라는 이색 설정의 소설이다. 정재일은 “인페르노에 침잠하고 동화될 것이냐, 아니면 인페르노가 아닌 곳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냐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은 “‘오징어 게임’ 음악을 듣자마자 정재일을 저의 타깃으로 삼았다”며 “흥미롭고 강렬한 음악을 만들어낼 음악가를 찾고 있었는데, 정재일이 바로 그런 작곡가였다”고 했다. 실제로 츠베덴은 취임도 하기 전에 공식 간담회에서 정재일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츠베덴은 정재일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지닌 다재다능한 작곡가’라고 불렀다. “오케스트라는 카멜레온과 같아야 하는데 그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제 옆에 있는 정재일”이라고도 했다. “어둡게 들리는데 그 안에 탈출구가 있고, 공포가 있는데 그 속에 분출과 평화가 있어요. 이 시대에 위안을 줄 수 있는 강렬한 작품이죠.” ‘인페르노’에 대한 츠베덴의 감상평이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과 작곡가 정재일. 서울시향 제공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과 작곡가 정재일. 서울시향 제공


츠베덴과 정재일이 처음 얼굴을 마주한 것은 2023년 4월이었다. 정재일은 처음엔 “해본 적도 없고 능력도 없다”며 난색을 보였다. 정재일은 “저 같은 조무래기가 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츠베덴은 “그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꼭 있어야 한다”며 그에게 거듭 작곡을 요청했다.



“음들이 천천히 퇴적되다가 화산처럼 폭발해요. 안개에 휩싸인 채 어딘지 모를 곳을 걷는 느낌이죠. 약간 평화롭고 명상적인데, 이게 비극일 수도, 종말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고요.” ‘인페르노’에 대한 작곡가 본인의 소개다. 정재일은 “작품을 만들 땐 그냥 ‘존버’를 한다”며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 했다. “영감을 찾아다니는 성격이 아닙니다. 일상의 편린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다가 어떤 화학 작용에 의해 뭔가 나오는 경험이 많아요.” 정재일은 “이번에도 엄청 버티면서 실험과 학습을 많이 했다”며 “청중이 극장을 나설 때 이곡이 그냥 마음에 남기만 하면 좋겠다”고 했다.



정재일은 종종 자신을 ‘근본 없는 음악가’라고 소개한다. 음대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엔 일찍부터 클래식 음악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이날도 “꼬마 시절부터 혼자 악보를 보면서 공부했고, 군대에 갈 때도 브람스 교향곡 악보를 몰래 숨겨 가지고 갔다”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을 비쳤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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