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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뛴다... 우리가 달리기 선수냐고 묻는 골프 대표팀

조선일보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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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뛴다... 우리가 달리기 선수냐고 묻는 골프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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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학수의 올댓골프 인터뷰]김형태 감독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운동”
골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해 초 태국 전지훈련에서 샷 훈련에 앞서 전력 질주하고 있다. /올댓골프

골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해 초 태국 전지훈련에서 샷 훈련에 앞서 전력 질주하고 있다. /올댓골프


요즘 아마추어 골프 국가대표팀은 틈만 나면 모여서 달린다. 해외 전지훈련이든 진천 선수촌 훈련이든 우선 뛰고 나머지 훈련을 시작한다. 5km는 기본, 10km도 달린다. 샷 연습보다 달리기와 피지컬 트레이닝을 우선 하다보니, 농반 진반으로 “우리가 달리기 선수입니까, 골프 선수입니까” 묻는 선수도 있다.

KGA(대한골프협회) 랭킹 1위 김민수는 “우리가 달리기 대표인지 잘 모르겠어서, 감독님께 이게 맞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지난 동계훈련 때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3개월 지나니 비거리가 20m 늘더라”는 게 그의 체감이다.

이 ‘달리기 프로그램’의 설계자는 김형태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김 감독은 “나를 악마라고 불러도 좋으니 일단 뛰고 운동하라고 했다”며 “선수강화위원장을 오래 맡았던 강형모 대한골프협회장께 말씀 드렸더니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적극 지지해주셨다”고 했다.

아마추어 골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해 전지 훈련 장소에서 태극기를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가운데 모자 쓴 이가 김형태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올댓골프

아마추어 골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해 전지 훈련 장소에서 태극기를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가운데 모자 쓴 이가 김형태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올댓골프


왜 골프 선수에게 먼저 달리라고하는 것일까. 김형태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한국 주니어오픈, 한국아마추어선수권 등 굵직한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프로에 전향해서도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며 모두 5승을 거두었다. 2014년에는 로열 리버풀CC에서 열린 디오픈에도 참가했다.

― 왜 ‘달리기’입니까.

“투어 선수들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는 120~130마일입니다. 그 임팩트를 라운드 내내, 나흘 동안 버티려면 뒤틀림을 견디는 코어와 하체가 필수예요. 하루 5시간 안팎 걷고 치고, 연습라운드까지 더하면 주 5~6일입니다. 다치지 않는 몸, 끝까지 버티는 몸이 먼저죠. 그래서 심폐지구력과 베이스 체력을 제일 앞에 둡니다. 핵심 도구가 달리기입니다.”


― 선수들과 함께 한다고 하지만 혹사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혹사를 시킬 생각이면 지도자가 뒤에서만 지켜보겠죠. 저는 땡볕에서도 선수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 동계훈련에선 ‘주 5일 달리기’를 기본으로 깔았고, 마지막 주에는 10km까지 늘려 심폐를 끌어올렸습니다. 무작정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합니다. 복싱·역도 국가대표팀을 지도했던 트레이너들과 부상 위험을 관리하고, 달리기로 바닥을 깐 다음 데드리프트·스쿼트 같은 기본 웨이트로 힘을 얹습니다. 강훈련과 충분한 회복의 균형이 원칙입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은 확실히 쉬게 했어요.”

5일 허정구배 제71회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2연패한 김민수가 동료들이 뿌려주는 물을 맞으며 기뻐하고 있다. /삼양인터내셔날

5일 허정구배 제71회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2연패한 김민수가 동료들이 뿌려주는 물을 맞으며 기뻐하고 있다. /삼양인터내셔날


― 스윙은 거의 안 건드린다면서요.


“대표팀 선수들에겐 각자 스윙 코치가 있습니다. 저는 큰 스윙틀을 흔들지 않아요. 체형도 모두 달라요. 김민수는 상체가 역삼각형이고, 유민혁은 둥글둥글한 체형이지만 달리기는 모두에게 득이 됩니다. 체력은 기술의 ‘그릇’입니다. 그릇이 커지면 같은 스윙이라도 후반 4~5홀에서 퀄리티가 유지돼요.”

― ‘달리기 중심’ 철학은 어디서 비롯됐나요.

“2014년 디오픈에 참가했을 때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 웨이트를 하는 선수들로 짐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는 비시즌에나 하던 강도의 중량을, 그들은 대회 아침에도 드라이하게 해내더군요. 상무(국군체육부대), 일본투어, 디오픈을 경험하면서 해외 유명 선수들이 체력훈련을 어떻게 하고 또 얼마만큼 준비하는지 눈으로 보고 직접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을 선수들에게 풀어 이야기하고, 지금 훈련 프로그램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상무 시절 토요일엔 남한산성을 오래 달리고, 일요일은 통째로 쉬던 제 루틴을 대표팀에도 이식했죠. ‘강훈련+충분한 회복’이 원칙입니다.”


― 선수들이 처음에는 불만이 있지 않았나요. ‘우리가 육상 대표냐’ 같은…

“처음엔 그런 말이 나왔죠.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설득력 있는 이유를 들으면 오히려 더 잘 따라옵니다. 왜 뛰는지 데이터를 보여줍니다. 심폐가 오르면 스윙스피드를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피니시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체력 훈련 효과는 보통 8~12주 뒤에 샷 퀄리티와 스코어로 돌아와요. 동계 직후엔 ‘잘 모르겠다’던 선수들도 요즘은 ‘비거리가 20~30m 늘었다’고 해요. 김민수도 태국 전지훈련에서 하루 4.5~5km, 마지막 주엔 10km까지 달렸고, 체중은 90kg에서 83kg으로, 체지방률은 16%에서 13%로 낮췄습니다. 살이 빠지면 거리가 준다는 통념과 반대로 스윙스피드가 올라 거리와 유연성이 함께 좋아졌다고 본인이 느끼고 있어요.”

―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도 체력에서 갈린다고 보나요.

“아마추어 대회는 카트를 타지만 프로는 4일 내내 걷습니다. 스코어는 마지막 4~5홀에서 갈립니다. 집중력이 떨어져 미스가 번지면 하루가 무너져요. 그걸 막아주는 게 심폐와 하체입니다. 그래서 달립니다. ‘버티는 힘’이 결국 기술을 지켜줍니다.”

― 지도자로서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나요.

“선수로 뛰며 체력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 한국아마추어선수권 우승이 있었고, KPGA 투어에선 통산 5승을 올렸습니다. 메이저 무대인 2014년 디 오픈도 밟았고요. 그 과정에서 해외 정상급 선수들의 체력 루틴과 준비 수준을 몸으로 확인했기에, 그 기준을 우리 현실에 맞게 풀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뛰고, 왜 들고, 왜 쉬는지’를 선수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결국 목표는 무엇입니까.

“단순합니다. 달리기로 바닥을 다지고, 웨이트로 기둥을 세운 뒤 각자의 스윙코치와 기술을 정밀 조정하는 것. ‘체력-멘털-기술’이 삼박자로 맞아야 세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선수들이 왜 뛰는지, 왜 드는지, 왜 쉬는지 이해하면 몸이 답을 합니다. 그리고 성적이 확인해 주죠. 우리는 그 ‘그릇’을 계속 키우겠습니다.”

김민수의 말처럼 시작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수치가 증명하고 있다. 달리기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습관이 됐다. 트랙에서 시작된 호흡은 페어웨이로 이어지고, 마지막 퍼팅에서 끝난다. ‘버티는 힘’이 붙을수록 샷은 덜 흔들리고, 한국 아마추어 골프의 기준선은 한 단계 올라갈 것이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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