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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조직' 탈레반, 국제외교 무대에 서다? [지구촌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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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조직' 탈레반, 국제외교 무대에 서다? [지구촌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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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집권 4년… 공식 인정 '1개국'이지만
미국·독일·중국, 탈레반 '대화' 시동 거는 모습
난민문제 해결, 경제 등 국가별로 이유 다양


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이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미국 철수 4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해 미소 짓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이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미국 철수 4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해 미소 짓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2021년 8월의 '미라클 작전'을 기억하시나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무너지자 한국 정부가 수송기를 보내 그간 현지에서 도움을 준 '특별기여자' 391명을 국내로 이송한 작전을 의미하는데요. 이들이 구출된 이후 아프간은 예상대로 탈레반의 통치 아래 놓였고, 아프간 전역에서는 여성 인권 탄압을 포함해 엄격한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기반한 통치가 이어져 왔습니다.

지난 4년 동안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자처하며 총리와 각료를 임명하고 국제 무대 복귀를 시도했지만, 러시아만의 승인을 받았을 뿐 다른 대부분의 나라로부터 정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기류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각국이 저마다의 이유로 탈레반과의 대화에 나서면서인데요. 이러다 '테러조직' 탈레반이 정부로서 국제 무대에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아프간과 협상"한다는 트럼프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오른쪽) 탈레반 경제장관이 13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찾은 아담 뵐러(가운데) 미 인질문제 담당 특사와 자밀리 칼리자드 전 미국 아프간 평화 특사와 대화하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오른쪽) 탈레반 경제장관이 13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찾은 아담 뵐러(가운데) 미 인질문제 담당 특사와 자밀리 칼리자드 전 미국 아프간 평화 특사와 대화하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만약 아프가니스탄이 바그람 공군기지를 건설한 미국에 기지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나쁜 일들이 생길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2021년 철수 당시 포기했던 아프간 수도 카불 인근의 바그람 공군기지를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미국은 그간 테러 대응이나 아프간에 억류된 미국인 송환 등 한정적인 부분에서만 탈레반 정부와 접촉을 이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 정부를 '아프가니스탄'이라고 칭했고, 탈레반이 운영하는 아프간 외무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식 거부 입장을 내비친 것은 마치 국가와 국가 간의 공식 외교 접촉처럼 보입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몇몇 정부가 탈레반을 '피할 수 없는' 협상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죠.

난민·경제·안보… 다양한 이유로 탈레반과 대화



압둘 살람 하나피 탈레반 정부 임시 부총리가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탈레반 통치 4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압둘 살람 하나피 탈레반 정부 임시 부총리가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탈레반 통치 4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다른 나라들도 점차 탈레반을 '정부'처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자국 내 아프간 출신 난민을 추방하기 위해 탈레반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독일이 대표적인데요. 지난 7월 독일 외무부는 탈레반 외무부 소속 관리 2명의 자국 입국을 허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독일 정부는 "탈레반과의 '기술적 접촉'을 수행할 뿐"이라며 탈레반 정부를 인정할 생각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지난 5월 파키스탄과 탈레반과의 대화를 중재했던 중국은 경제적 이유가 커 보입니다. 중국은 아프간과 인접한 파키스탄에서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기반시설을 건립하는 등 협력을 강화해 왔지만, 탈레반 집권 이후 유출된 무기를 이용해 무장한 파키스탄 내 반군 탓에 중국의 개발 사업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습니다. 탈레반이 아프간 지역을 안정화할 수 있다면 중국으로서는 파키스탄에서의 사업을 추진하기 용이해질 것입니다.


자국 안보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바로 탈레반을 유일하게 공식 정부로 인정한 러시아입니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 격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은 지난해 3월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대형 공연장에서 테러를 저질렀습니다. 당시 149명이 사망하고 6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는데요. 러시아가 ISIS-K와 사이가 나쁜 탈레반을 도와 자국의 안보 부담을 줄이려 시도했을 것이라고 WP는 분석했습니다.

자신감 가진 탈레반


세계 곳곳에서 날아오는 '러브콜'에 자신감을 얻은 것일까요?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 탈레반 최고지도자는 지난달 장관들의 직함에서 '대행'이라는 명칭을 삭제하라고 지시하는 등 자신들의 집권을 점차 공고히 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20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아프간 대학에서 여성이 서술한 교과서 사용이 금지되는 등 여성 탄압 정책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향후 탈레반의 국제 무대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정치 분석가 무하마드 아미르 라나는 WP에 "대부분 나라가 인도주의적 지원과 이주 정책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탈레반이 평범한 정부로 취급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아이자즈 아마드 쇼드리 파키스탄 전 외무장관은 "탈레반은 공식적인 인정만 없을 뿐, 아프간의 통치자로 취급받고 있다"고 말했죠. 지난 4년 사이 탈레반의 입지 변화를 본다면 이들이 국제 무대에 '정부'로서 올라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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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