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장기임대 해주는 美 CLT모델
韓 ‘토지임대부 사회주택’과 유사
거주민들 “‘안정감’ 가지고 대대손손 사는 게 목표”
韓 ‘토지임대부 사회주택’과 유사
거주민들 “‘안정감’ 가지고 대대손손 사는 게 목표”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제공되는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부담가능주택 펀그로브 아파트의 모습. 기사와 사진은 직접 관련 없음. 홍승희 기자 |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미국에선 인종 간의 주거 불평등이 여전히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이민자와 유색인종이 유입되면서 금융기관들은 백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만 대출을 내어주는 등 각종 차별적 관행이 이어졌는데, 이 과거가 현재의 주거 불평등과 인종 간의 부 격차를 초래한 것이다. 미국은 ‘공동체토지신탁(CLT)’라는 사회주택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99년간 임대 살고 이후엔 소유…미국의 CLT 주택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로젠센터 호텔에서 25~27일 사흘간 열린 ‘제38회 부담가능주택(Affordable Housing) 콘퍼런스’에서는 미국에서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은 각종 임대주택 모델이 소개됐다. 50개가 넘는 세션에는 12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나섰다.
첫날 실시된 ‘혁신과 데이터, 그리고 변혁으로 구현하는 영구적·저렴 주택’ 세션에선 미국 각 지역의 임대주택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가 시행하고 있는 CLT 모델에 대해 소개했다.
CLT란 사회주택을 공급할 때,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비영리 단체가 토지를 소유하고, 주택은 개인이 장기임대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미국에선 대부분 99년 토지 임대차 계약(99 year ground lease)를 통해 이 CLT를 공급한다. 토지는 비영리 조직이 영구적으로 소유하고, 거주자는 주택에 대해서만 99년 지상임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지난 8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제38회 부담가능주택 콘퍼런스에서 연사가 미국 커뮤니티토지신탁(CL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승희 기자 |
메사추세츠 보스턴의 DSNI가 99년 계약으로 다가구·단독주택을 공급하는 대표적인 비영리 단체다. DSNI의 수장 존 스미스(John Smith)는 “CLT가 성공하려면 토지 이용에 대한 지역사회의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역사회와 가정의 안정성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장기임대는 결국 거주자가 해당 주택을 사실상 소유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실제 DSNI는 보스턴의 한 지역사회에서 101 가구의 주택 소유 사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99년의 임대계약을 통해 여러 세대가 대대손손 살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한 셈이다.
야심차게 공급됐다 실패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부활하나
미국의 CLT와 가장 유사한 국내 모델은 바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다.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면서, 수분양자에게는 건축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은 과거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주요 임대주택 공급 정책모델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서초구에서 최초로 분양하는 등 야심차게 등장했지만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일정 기간 거주 후 환매를 하려고 해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만 팔 수 있어 선호도가 높지 않았던 탓이다.
최근에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에서 입주민이 임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최기찬 서울시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운영 민간사업자가 반환하지 못한 임대보증금은 총 3억8900만원에 달한다. 피해 건수도 7건이다. 토지가격이 제외된 덕분에 보증금 자체는 높지 않지만, ‘전세 사기’와 유사한 피해까지 발생하며 실패한 사회주택 모델로 인식됐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28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LH 개혁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
하지만 최근 정부가 LH가 ‘땅장사’로 수익을 올리는 택지 매각 방식을 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히면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을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LH가 그간 민간 시공사에 택지를 매각하며 집값이 급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저렴한 임대료의 임대주택을 사회에 공급하고, LH는 장기적인 임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단 저번처럼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거주민들의 문화와 인식을 변화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입주민들이 해당 주택을 나중에 되팔아 차익을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안정적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함께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숀 네스빗(Ashon Nesbitt) 미국 플로리다주택연합회장은 미국의 CLT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두고 “CLT 입주자들의 관심은 ‘차익 실현’보단 ‘안정성’에 더 가까웠다”며 “오늘 사서 뒤에 되팔아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게 그들이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동기’”라며 “그들은 ‘단순히 집을 사서 돈을 벌겠다’보다 ‘생활 기반을 안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