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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자발적 집단자결 v. 황국화 교육탓 공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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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자발적 집단자결 v. 황국화 교육탓 공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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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소노 아야코- 2

오키나와 전투 직후 미군에 의해 수용된 오키나와 생존 주민들. peace-museum.pref.okinawa

오키나와 전투 직후 미군에 의해 수용된 오키나와 생존 주민들. peace-museum.pref.okinawa


(이어서) 소노 아야코의 ‘막말’이라 할 만한 소신 발언 가운데 가장 도드라진 건 국가 교과서 검정(검열)제도를 두고 교육기본법 위반이라며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가 국가(문부성)를 상대로 건 소송에서, 그가 정부 측 증인으로서 1988년 법정에서 한 발언이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오키나와 전투 중 섬 주민들이 겪은 참극, 특히 패전 직전 사실상 강요에 의해 여러 참혹한 방식으로 자행된 집단 자결을 두고 문부성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교과서에서 삭제한 데 대한 공방 와중이었다. 아야코는 그들의 집단 자살을 “오키나와인들 스스로 선택한 장거(壯擧)”라고 주장했다.

오키나와 전투의 민간인 사망자는 당시 섬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본도 기준 3분의 1)인 12만~15만 명이었다. 작가 김숨의 소설 '오키나와 스파이'의 모티브가 된 일본군에 의한 ‘미군 스파이’ 혐의 학살과 기아 및 질병 희생자도 적지 않아 집단 자결 희생자 숫자를 특정할 순 없지만, 정황상 다수라는 추정이 지배적이다.

일본 사회학자 도미야마 이치로는 ‘전장의 기억’이란 책에서 오키나와 주민 집단 자살을 ‘황민화 교육의 결과’라는 식으로 아야코 유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며 지배-피지배의 이분법적 균질적 정체성으로 포섭되지 않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양의적 정체성, 즉 “일본인(본토인) 되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내부로 스며드는 타자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키나와 출신 병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을 인용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면, 우리 오키나와인은 일본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거다. (...) 우리도 일본으로 가서 화기애애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그 병사는 ‘일본인’으로서 전장에 동원됐지만, 진짜 일본인 되기를 갈망한다. 그 상상은, 저자에 따르면, 일상과 전장과 이어져 있다는 선명한 진술이다. 하얼빈 731부대 박물관 전시실 일본군 군 군속들의 자술서, 즉 ‘동아의 평화’라는 슬로건 너머 ‘출세를 위하여’라는 구절처럼 말이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