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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 권력 우위론’에… 문형배 “헌법 한번 읽어보시라”

조선일보 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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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 권력 우위론’에… 문형배 “헌법 한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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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권력 서열 발언’ 우회 비판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성이냐시오관에서 '법률가의 길-헌법소원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마친 뒤 Q&A 시간을 갖고 있다. /뉴스1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성이냐시오관에서 '법률가의 길-헌법소원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마친 뒤 Q&A 시간을 갖고 있다. /뉴스1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17일 이재명 대통령의 ‘권력 서열’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한민국 헌법을 한번 읽어보시라, 이게 제 대답”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직접 선출 권력’인 입법부가 ‘간접 선출 권력’인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 전 대행 지적은 이 대통령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됐다. 문 전 대행은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다. 사법연수원 시절 노동법학회 활동을 함께하는 등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문 전 대행은 이날 SBS라디오에 출연해 “우리의 논의의 출발점은 헌법이어야 한다. 헌법 몇 조에 근거해서 주장을 펼치시면 논의가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 발언 이후 법학계에서는 이 대통령의 ‘권력 서열’ 발언에 대해 “우리 헌법에 규정된 삼권 분립에는 서열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문 전 대행 지적도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 전 대행은 “나는 대화의 주체가 아니다.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 대통령 발언을 구체적으로 논박하진 않았다.

문 전 대행은 또 재작년 9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보수 진영에서 판사를 공격했던 사례를 들며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다. 다만 국민이 사법을 불신하고 그 원인이 제도 미비에 있다면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 헌법에 따라 만든 기관이다. 당연히 사법부의 판결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며 “사법부의 권한은 헌법에서 주어진 권한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존중해야 된다”고 했다.

문 전 대행은 최근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대법관 증원 등 이른바 ‘사법 개혁’에 대해선 “사법 개혁의 역사에서 사법부가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는 “사법이 개혁돼야 한다는 건 동의하지만, 그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를 충분히 해서 결론을 내야 지속 가능하다”며 “행정부, 입법부, 변호사, 법원, 검찰의 이해관계가 다른데 어떻게 일도양단식으로 결론을 내리나”라고 했다.

이는 대법원 입장과도 비슷하다. 대법원은 지난 12일 전국법원장회의를 가진 뒤 “(사법부) 개선 논의에 있어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당시 대법원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 법관 평가 제도 개편,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 도입 등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문 전 대행은 대법관 증원에 대한 질문에 “언급하지 않겠다”며 구체적 답은 피했지만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는 지난 10일 서강대학교 특강에서 “국회와 대법원이 상고심 제도에 대해 한 차례도 대화하지 않고 대법관 증원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대법관을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대법관 증원은 사실심(1·2심)을 약화시켜 신속 재판과 배치된다고 지적하는데, 민주당 내에서도 법관 출신인 박희승 의원 등이 이러한 이유로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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