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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끊던 순간 [이문영의 당신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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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끊던 순간 [이문영의 당신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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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당신과 맞닥뜨린다는 생각에 전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한경(가명·당시 20대 후반)이 본 적 없는 모습으로 그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그 사람을 쳐다보는 한경의 시선이 한경의 눈을 피하는 그 사람의 시선과 스치듯 교차했다. 살면서 가장 긴장한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그 사람과 대면하는 순간을 한경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삶이란 순간들의 집합이었다. 그날 두 사람이 앉은 자리도 각자의 순간마다 그들이 해온 선택의 결과였다.



당신도 조금은 불편했나요?



졸업을 앞둔 한경이 학교를 옮겨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을 때 그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지도교수를 찾는 한경에게 포털이 그의 이력을 검색해서 띄웠다. 연구 업적으로 상을 받았다는 소식과, 학회장에 취임했다는 소식과, 산학협력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뉴스로 돌아다녔다. 한경은 그 사람이 이끄는 연구실에 지원해 석·박사 학위 과정을 밟았다.



오래된 전설처럼 들렸습니다.



한경의 대학원 선배들이 국제청소년학술대회 발표 자료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 자료로 ‘청소년학자상’을 받은 사람은 선배들이 아니라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교수의 딸이었다. 교수의 지시로 ‘동물 스트레스 실험’을 대신하고 보고서까지 작성하느라 연구실 대학원생들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수상 경력을 입시에 활용한 딸은 국내 최상위권 대학 생명과학부에 과학인재특별전형으로 합격했다. 교수는 딸의 대입 자기소개서 수정·보완도 제자들에게 시켰다.



‘오래전’은 과거형이 아니더군요.



‘자식 사랑’을 앞세워 시작됐을 교수의 행위는 타인의 귀한 자식들을 동원해 입시 때마다 되풀이됐다. 제자들을 끌어들여 합격시킨 대학에서 딸이 3학년이 되던 해에 교수는 다시 제자들을 이용해 의학 계열 대학원 입학을 준비했다. 실험 단계별로 연구원들에게 역할이 분담됐다. ‘이번 제자들’ 중엔 한경도 있었다. 그가 참여한 실험이 교수 딸의 논문용이란 사실도 한경은 실험에 투입된 뒤에야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가담하게 만드는 것을 ‘체제’라고 하지요.



교수는 실험뿐 아니라 프로젝트 신청서·수행 계획서·보고서 작성 등 전 과정에 제자들을 ‘사용’했다. 연구실에 두어차례 나온 교수의 딸은 실험이 한창일 때 캐나다 교환학생으로 출국했다. 연구원들이 대신 만든 보고서와 포스터로 과학 쪽 학회와 재단에서 주는 상도 받았다. 교수는 제자가 쓴 논문에 단독 저자로 딸의 이름을 올렸다. 그 논문과 수상 실적들 덕에 딸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학교의 치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했다. 엄마가 쌓아 올린 거짓 위에서 딸은 거짓 청소년 학자가 되고, 거짓 과학 인재가 되고, 거짓 논문 저자가 되고, 미래의 거짓 치과의사가 됐다. 언제부턴가 성공과 행복은 옳고 그름 밖에 있었다.



그렇게 이 세계의 비밀을 알고 말았습니다.



합격 소식을 듣고 한경은 충격을 받았다. 실험 과정에서 한경에겐 데이터 산출 임무가 주어졌다. 한경이 정리해서 보고한 데이터는 무의미한 결과값이었다. ‘가설 입증에 실패했다’는 사실만 입증할 뿐인 데이터를 교수가 조작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논문에 넣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육자가 사람의 생명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행위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 논문이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저널에 실렸다. 게재 전 학술지가 요청한 추가 실험과 논문 수정도 연구원들이 했다. ‘부정한 음모’에 가담했다는 자책과 논문이 인용될수록 누군가의 삶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그를 괴롭혔다.



전설은 혼자 쓰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은 교수가 오랫동안 심어온 ‘시스템’이었다. 그 생각 탓인지도 몰랐다. 교수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참아야 한다는 생각, 학위를 따고 학계든 업계든 자리 잡으려면 불가피하다는 생각, 연구소가 교수 딸의 ‘스펙 제작소’가 되기까지 그 생각들이 전설을 함께 썼을 수도 있었다. 그 전설에 자신도 이야기 하나를 보탰다는 자괴감이 한경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켰다. “이렇게 나가면 이쪽에서 잘 될 수 있을까.”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힌 연구원에게 교수가 그 말을 꽂은 날이 있었다. 어떤 목소리는 아무리 덩치를 부풀려도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11회 ‘공작새의 화법’) 누군가는 작고 낮은 말로도 독을 뿜었다. 교수가 던진 말들이 한경의 파동 속으로 풍덩풍덩 떨어졌다.



단절되지 않는 이야기가 전설이 됩니다.



끊어야 했다. 교수 모녀의 입시 비리와 연구실 부정 운영의 증거를 모아 학교를 나왔다. 그 행동에 한경은 많은 것을 걸었다. 연구실은 물론 대학원도 그만뒀다. 학부 생활과 대학원 준비 기간, 연구원 3년과 그 시간들에 들인 돈과 노력도 모두 두고 떠났다. 내부고발자가 된다는 의미는 그 분야에서 꿈꿨던 미래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부당함을 내면화하지 못한 ‘죄’는 대가를 요구받곤 하죠.



언론에 알리고, 정부 조사에 자료를 제공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했다. 전문 지식 없인 파악하기 힘든 연구·실험 과정을 교육부·수사기관이 이해하도록 도왔다. 검사의 부탁으로 교수 딸과 대질도 했다. 그사이 공익 제보 사실이 노출됐다. 교수가 한경을 ‘배신자’로 지목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수사가 길어질수록 일상이 부서졌다. 예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고단했고, 잠을 자지 못했고, 병원 상담을 받았다.



올 게 왔구나 했습니다.



법정으로 들어가며 한경은 숨을 몰아쉬었다. 교수의 불법과 비리를 확인한 교육부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교수는 수감됐고 학교는 교수를 파면했다. 딸의 대학원 입학도 취소됐다. 재판정에 설 날을 예상하곤 있었지만 막상 증인 출석 통보를 받자 가슴이 덜컹거렸다. 수의를 입은 교수가 법정으로 들어와 피고석에 앉았다. 딸도 피고로 함께 출석했다. 한때 스승이었던 교수와 대면하며 한경은 극도로 긴장했다. 증인 선서를 할 땐 평생 다시 겪을지 모를 속도로 심장이 뛰었다.



두려움이 녹아내린 건 당신의 눈을 봤을 때였어요.



교수의 변호인들이 출석 증인들 중 한경에게 신문을 집중했다. 교수는 대형 로펌에 법률 대리를 맡겼다. 검사·판사 전관들이 포함된 11명의 변호사가 혐의를 부인(‘딸이 연구 주제·실험방법 선정과 보고서 등 초안 작성을 직접 했고 대학원생들에겐 도움을 받은 것에 불과하며 데이터 조작도 교수 지시 없이 대학원생들이 임의로 한 것’)하는 교수 편에서 한경에게 물었다. 질문들에 답하며 한경이 교수를 쳐다봤다. 연구실에선 부당한 지시를 당당하게 내리던 사람이 재판 내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전엔 본 적 없는 눈으로 한경의 시선을 피했다.



그 눈 때문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어요.



선택의 순간은 교수에게도 있었다. 딸을 위한다는 믿음으로 옳지 않은 일을 마음먹던 오래전 순간. 혼자 몰래 처리하던 일들을 제자들에게 시키면서도 부끄러움을 버렸던 순간.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앉아 옛 제자의 눈을 피하는 그 순간까지 교수도 많은 선택을 했을 것이었다. 그의 눈을 주시하며 한경은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서로 다른 선택의 결과로 만난 자리에서 한경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재판 결과를 좇진 않았습니다.



그날로부터 1심 선고(지난해 7월 교수와 딸에게 각각 징역형과 집행유예)가 나오는 데만 5년이 걸렸다. 한경은 사건(치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취소한 학교를 상대로 딸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도 1·2심 모두 원고 패소)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 했다. 선고 소식도 기사를 본 친구가 알려줬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새 일을 찾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20대의 전부를 쏟아 넣었던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그는 일하고 있었다. 교수는 항소했다. 항소심 첫 재판이 개시(지난 7월)되기까지 다시 1년이 흘렀다. 내부고발로부터 벌써 7년이었다. 그사이 어떤 일들은 흐릿해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명확해지는 일들도 있었다.



전설을 끊던 순간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한경은 여전히 사건 속에 있는 자신을 볼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걱정이 많아졌다. 지켜야 할 가정이 생긴 뒤부턴 언제 다시 일상이 깨질지 몰라 조바심이 났다. 예기치 못한 ‘어떤 전설’이 어느 날 불쑥 그를 찾아올 수 있다는 불안도 따라다녔다. 그 순간이 닥쳤을 때 무슨 선택을 해야 할지 한경은 지금도 가끔 자문했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전설 자체가 아니었다. 그때처럼 전설을 끊겠다고 나설지 모를 자신이었다.



당신도 여전히 후회가 없나요?



이문영 | 이슈팀 기자. 책 ‘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루카스’ 등을 썼다. 세기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진 못해도 누구든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小說)의 주인공은 될 수 있다. ‘이야기의 자격’을 인정받은 적 없는 이야기들이 글이 되고, 읽히고, 연결될수록 언어와, 기록과, 서사의 틈들도 조금은 메워질 것이라 믿는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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