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중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본영 | 경제산업부 선임기자
미국 정보기관들은 북한을 자신들의 ‘악몽’이라고 부른다. 세계 최고의 첩보 역량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무력감의 표현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2019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군 특수부대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노린 감청 장비를 북한에 설치하려다 발각되자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퇴각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여부를 두고 논란도 있지만, 미국 정보기관들에는 북한이 최악의 상대라는 점을 새삼 알려주는 일화다.
한국은 어떤가? 북한과는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미국은 한국에 수많은 ‘인간 감청기’를 갖고 있다. 고용돼서, 정보 교환을 위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고, 미국이 그저 좋아서 정보를 건네는 이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어떤 대국도 상대의 내부 협조자들 없이는 일말의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을 다루려면 많은 협조자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영향력 행사의 원천인 정보력을 뒷받침해주는 이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은 친원파·친명파·친청파·친러파·친일파·친미파 따위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는 외부와 능숙하게 소통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 일반에 대해 ‘친○파’라는 딱지를 붙이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문제는 자기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고, 외세의 힘을 빌려 내정을 좌우하려 하고, 이간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주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친미파 일부의 행태도 그런 전통을 이어받았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숙청 또는 혁명 같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파문이 일었다. 누가 그런 인식을 주입시켰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부 개신교 세력 등의 행위가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를 끌어내리거나 혼내줄 방법이 국내적으로는 마땅치 않다고 보는 이들은 트럼프를 마지막 희망으로 보는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거짓과 과장을 섞어 국내 상황을 전하면서까지 미국을 오도하는 것이다. 부정선거 주장을 하는 국내 단체가 워싱턴 근교에서 최근 연 행사에 참석한 전한길씨는 자신이 탄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망명 권유도 받았다고 했다. 이런 인사들이 미국의 개입을 기대하며 공공연히 워싱턴을 누비는 행태는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출신인 민경욱 전 의원은 2020년 4·15 총선은 중국이 개입한 부정선거였다며 백악관 앞에서 1인시위를 하기도 했다. 전광훈 목사는 미국 정치인들과 교민들을 상대로 부정선거론을 열심히 전파했다.
사실 이런 현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자신들과 대립하는 이들은 반미 집단이라는 인식을 퍼뜨리는 광범위한 세력이 그 저변에 있다. 이들은 정치권, 정부, 학계에 넓게 포진해 있어 일일이 지목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친미, 더불어민주당=반미’라는 공식을 미국인들에게 열심히 주입시키는 이들도 많다. 한국 상황에 웬만큼 정통하지 않은 미국인이 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들에게 매우 고분고분한 한국인들이 그렇다고 속삭인다면 그런 줄 알고 마는 것이다.
이런 구도는 미국에도 편리한 측면이 있다. 전통적으로 분할 통치는 제국에 크게 쓸모 있는 수단이었다. 이런 상황이 만든 콤플렉스는 한국의 진보적 정권들의 손발을 묶는 효과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방미 중 연설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댐)에 관해 한국이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 것도 미국의 ‘의구심’을 신경 쓴 발언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투병까지 보내라는 정부 내 친미파의 요구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한 것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철두철미한 친미가 아니면 반미가 아니냐는 사람들, 자신들만이 친미라는 ‘제국의 모범생들’의 고자질 전통은 뿌리가 깊다. 해방 직후 친일 대지주 등이 중심이 돼 만든 한국민주당은 여운형과 그가 세운 인민공화국은 친일파 세력이라고 미군정에 일러바쳤다. 친미파로 막 변신한 자신들의 과거는 쏙 빠뜨린 채 낯뜨거운 무고 행위를 한 것이다. 반민주 세력이 민주 세력을 음해하는 지금과 닮은 면이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기 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한다. 그런 데 가서 남의 나라 민주주의를 보살펴달라고 해야 하나? 지난겨울 한국의 친위쿠데타 진압을 인상 깊게 본 미국인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ebon@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