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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③파도를 보지 말고,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라

조선비즈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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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③파도를 보지 말고,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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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 “ 파도를 보지 말고,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라”. 이는 인간의 외형적 징후가 아니라 그 내면의 본질을 관찰함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한다. 관상의 궁극적 지향점은 단순 보이는 얼굴 형태가 아니다. 인간의 심연, 즉 심층적 동기와 의지에 이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진정한 통찰은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조건과 보이지 않는 구조를 사유할 때 비로소 열린다. 마찬가지로 중국이라는 복잡한 사회, 경제 구조의 장 속에서 중국의 사업 성패를 가늠하려면 표면적 지표와 외형적 현상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내부를 관통하는 심층 구조와 보이지 않는 작동 원리를 읽어낼 때 비로소 올바른 전략과 통찰력이 형성된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뒤흔든 중국 개혁 개방

중국 공산당의 이념 논쟁으로 지체되던 개방 국면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989년 12월 공산국가이자 혈맹 관계인 루마니아에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실각과 총살형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루마니아는 공산당 독재로 인한 경제 정책의 실패로 극심한 경제난에 봉착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시위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차우셰스쿠는 군인을 앞세워 무력 진압을 시도했으나 결국 시민들에 의해 처형됐다.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이 사태의 중국 내 전파로 인한 인민들의 동요를 우려했다. 이에 루마니아 사태가 중국에서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국 지도자들도 경제 정책의 실정이 이런 충격적인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상황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 해 6월에 발생한 텐안먼 사태를 상기시킨다는 두려움도 엄습했을 것이다. 더욱이 소련 공산당의 해체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중 남방지역 시찰 모습. / 바이두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중 남방지역 시찰 모습. / 바이두



이런 급박한 대내외 환경으로 인해 88세 노구인 덩샤오핑이 1992년 건곤일척의 심정으로 ‘남순강화(南巡講話·덩샤오핑이 중국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개혁·개방의 지속과 시장경제 도입을 강력히 천명한 일)’를 강행한다. 그는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고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다”고 강조하며, 개혁·개방에 부정적인 보수파를 향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추진을 선포했다. 이는 곧 흑묘백묘론에 기초한 중국식 시장경제의 확산과 현대화의 가속화를 예고한 사건이었다.

동북아 정치구조의 급격한 변화

1992년 세계 질서와 동북아 정치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다. 동서 냉전체제의 해체와 한국 북방외교의 결실인 한국과 중국간 정식 외교관계 수립이 이뤄진다. 독일 기업들의 독무대였던 중국 시장을 한국 기업들도 적극 개척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아울러 1990년대 초 동서 냉전의 해체,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등 글로벌 경제질서가 재편된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화 운동은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을 요구했다. 대한민국의 ‘세계화 정책’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에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세계 경영의 닻을 올린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세계 경영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들은 중국 진출을 매우 부정적으로 여기고 실제 현지 투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필자가 근무하던 기업도 경영진의 중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중국 투자의 진전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대기업도 투자보다는 중국과 수출입하는 정도의 규모가 적은 안정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수준이었다.

1전 1승의 기회를 잡다

이런 부정적인 중국 투자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다. ‘세계 경영’ 전략으로 동구 공산권 국가에 과감하게 투자하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중국 투자가 실행된다. 한중 수교 첫해인 1992년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합작회사를 중국 내륙지역에 대담하게 설립한다. 당시 수출 기지 구축을 염두해두고 중국 공장을 세우는 삼성그룹의 투자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전략이었다. 중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중국 현지 투자 붐을 조성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 내수 시장을 목표로 한 한국기업의 중국 투자 결실은 실로 엄청난 결실을 잉태했다. 대한민국이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주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삼성과 현대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2000년 초부터 삼성의 전자제품은 중국 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특히 삼성 핸드폰은 중국인들이 제일 선호하는 제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중국인들의 접대용 선물 리스트에 항상 최고의 인기 있는 제품으로 인정받았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삼성전자에 근무한 이유만으로 중국인에게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 브랜드 인기의 후광에 덕을 본 것이다. 삼성은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무려 20%가 넘는 최고의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이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2000년대 삼성전자가 출시한 휴대폰 일명 '애니콜 가로본능2(SCH-V600)'. /삼성전자 뉴스룸

2000년대 삼성전자가 출시한 휴대폰 일명 '애니콜 가로본능2(SCH-V600)'. /삼성전자 뉴스룸



현대자동차도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10%에 달하는 엄청난 성공을 발판으로 글로벌 탑(TOP) 브랜드로 성장한다. 이 외에도 LG,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오리온 초코파이, 농심 신라면 등 다수의 한국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상당한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다.

1990년대 필자는 한국기업 베이징사무소 대표로서 여러 대기업 경영자들과 교류하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 대기업의 회장으로부터 1990년 초 한국 기업가들이 중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이유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 기업가들로부터의 정보가 이유였다. 우리 기업가들이 중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중국은 적대 국가로서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중국에 대한 정보를 직접 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그룹의 회장들이 일본의 대기업 총수들에게 중국 정보를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일본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었다. 이런 부정적 상황이 우리나라 그룹의 경영자에게 여러 통로로 전파된 것이다. “절대로 중국 공산당을 믿고 투자하지 말라.” 이는 우리 경영자들로 하여금 한동안 중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독일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특수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당시 중국을 끝까지 오판하여 일본처럼 중국 내수 시장 투자에 실기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앞에서 언급한 대로 일본은 2000년 이후 비로소 중국 내수 시장 공략을 시작하여 90년대 중국 특수를 실기함).

우리는 과연 중진국 함정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삼성과 현대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 역사의 가정은 허상이나 그래도 이런 상상은 아직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이제 1전 1승의 승기는 또 다른 큰 판으로 이어질 것인가?

[전문가 칼럼] ①중국에 대한 오판이 잉태한 일본의 실기

[전문가 칼럼] ②서독의 어부지리⋯거침없는 중국 시장 진격

[편집자주]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삼성 중국 지역 전문가로 대륙을 돌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CJ(제일제당) 중국사무소 대표를 지냈으며,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했고, 현지에서 화장품 유통업체 카라카라를 창업하기도 했다. 2012~2017년에는 중국 50대 민영기업 신화련그룹의 투자수석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이춘우 특임교수의 칼럼은 3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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