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7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통상협의를 하고 있다. /뉴스1 |
한국 정부가 미국에 3500억달러(약 485조원) 투자 펀드를 마련하는 조건으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달러를 단기에 조달할 경우 원화 가치 폭락 등 외환시장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14일 정부 고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한미 재정 당국은 현재 통화 스와프를 포함한 투자 펀드 조성 방안을 협의 중이다. 통화 스와프는 한국이 원화를 주고 미국에서 달러를 빌려올 수 있는 ‘교환 약속’으로, 외환시장 충격을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정부는 지난 7월 관세 협상 타결 당시 투자 펀드의 상당 부분이 ‘보증’ 형태로 구성돼 있다고 밝혔었다. 보증은 돈을 내는 대신 “문제가 생기면 갚겠다”고 약속만 하는 것으로, 당장 달러가 빠져나가지 않아 부담이 적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상당 부분을 보증이 아닌 현금으로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통화 스와프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통상 당국에 따르면 3500억달러는 지난달 말 한국 외환 보유액 4163억달러의 84%에 달한다. 현실적으로 달러 현금 조달이 불가능한 규모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9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미국 요구대로라면) 3500억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1년에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은 200억~300억달러를 넘기 어렵다”고 했다. 시장에서 원화를 대거 투입해 달러를 조달할 경우,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치솟아 외환시장 붕괴 가능성이 있다.
스와프가 체결될 경우, 외환시장은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 위기 때도 한미 통화 스와프가 체결되자 원화 가치 급락이 멈춘 바 있다. 다만 미국이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과의 무제한 스와프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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