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 ‘퍼플렉시티’에 “한국 기업 쿠팡·삼성·두나무와 스테이블코인을 그려달라”고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
김외현 | 비인크립토 동아시아 편집장
최근 한국의 큰 기업들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의 주요 뉴스에 이름을 올렸다.
이달 초 출범한 블록체인 ‘템포’의 파트너 명단에 쿠팡이 포함됐다. 템포 프로젝트는 페이팔에 뒤이은 미국의 2위 결제 사업자 스트라이프가 주도한다. 다른 파트너로는, 비자와 도이체방크, 스탠다드차타드 같은 전통 금융기업이 있고, 리드뱅크, 누방크, 레볼루트 등 핀테크 기업, 배달 서비스 도어대시와 전자상거래 업체 쇼피파이, 그리고 오픈에이아이와 앤트로픽 같은 인공지능 기업을 망라한다.
이들이 종국에 하려는 건 스테이블코인 사업이다. 템포는 스테이블코인 결제에 특화된 블록체인이고, 스트라이프는 이미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를 갖춘 결제 서비스다. 아마존과 월마트가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하듯이, 쿠팡도 이를 계기로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저울질할 것이다.
지난달 말에는 삼성의 벤처투자사 삼성넥스트가 레인이라는 미국의 핀테크 기업에 투자한 것이 밝혀졌다. 레인은 스테이블코인 기반 카드 서비스와 결제 인프라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시리즈에이(A) 투자를 유치한 지 다섯달 만에 시리즈비(B) 투자를 유치한 건데, 그사이 기업 가치는 6배가 올랐다.
삼성은 단순한 투자일 뿐이라 하겠지만, 사실 삼성페이는 기존 플라스틱 카드로 결제 가능한 거의 모든 곳에서 결제할 수 있는 걸출한 서비스다. 국내에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되면 가장 먼저 도입할 기업 중 하나로 삼성이 꼽히는 이유다. 삼성넥스트의 투자는 의미가 작지 않아 보인다.
국내 최대 코인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는 지난 9일 ‘기와’라는 이름의 자체 블록체인을 발표했다. 자체 암호화폐는 갖고 있지 않지만 “(업비트의) 거대한 유동성과 탄탄한 사용자 기반”을 원동력으로 삼아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다양한 자산이 자유롭게 쓰이고 누구나 안심할 수 있는 웹3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이때 무대 화면에는 활용 사례로 ‘스테이블코인’ ‘스테이킹’ ‘디파이’ 등이 제시됐다. 종합하면, 나중엔 이 블록체인 위에 스테이블코인이 만들어지고 쓰일 것이란 얘기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는 속도를 내다가 결국 지난 7월 대통령 서명으로 모든 절차를 완료했다. 반면, 국내 논의는 발행 권한을 은행에만 줄지 일반 기업에도 열어줄지, 규제는 어느 부처에서 맡을지 등이 아직 쟁점으로 머물고 있다. 법안이 몇개 나왔지만 아직 국회 논의는 시작도 못 했고, 그사이 한국의 큰 기업들은 조용히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깊숙이 발을 찔러 넣은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는 우려가 작지 않다. 한국 기업들이 국외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 편입되면서 국내 금융 혁신의 동력이 국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내 핀테크 생태계의 양극화다. 규제 불확실성 속에서 외국 진출 여력을 갖춘 대기업들만 스테이블코인 경험을 쌓아가는 동안,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 핀테크 기업들은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다. 명확한 가이드라인 부재 탓에 규모가 상당한 금융기업들도 움직임이 제한적인데, 조그마한 스타트업들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블록체인·암호화폐 기술이 산업으로 존재하지 않고 시장으로만 존재한다. 거래소를 빼면 이렇다 할 기업도 손에 꼽고, 거래량을 빼면 혁신적 제품·서비스 같은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미국 스테이블코인을 시작으로 세계 블록체인 산업이 재편되려는 현시점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먼저 나선 큰 기업들은 많은 걸 배워오면 좋겠다. 또한 정부는 이들 기업의 국외 경험이 국내에 자연히 확산하도록 시범사업 육성과 세제 혜택 등으로 생태계를 유도하면 좋겠다. 이렇게 해야 블록체인·암호화폐라는 혁신기술이 우리 사회에 유용한 기술로 자리 잡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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